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크래프톤이 중국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모바일 게임 ‘화평정영’에 대해 로열티를 받고 있다고 뒤늦게 인정해 파장이 일고 있다.
업계에서는 “화평정영은 크래프톤의 대표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이름만 바꿔 중국 판매를 위한 우회 판호(판매허가)를 획득한 게임”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정작 크래프톤은 “화평정영은 크래프톤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게임으로 로열티도 받지 않는다”고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IPO를 위해 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IPO를 진행 중인 크래프톤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업 전망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크래프톤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중국 텐센트가 개발·서비스하고 있는 화평정영에 대한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배분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화평정영에 기술적 노하우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로열티를 받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화평정영은 사실상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같은 게임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크래프톤은 지난 2018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글로벌 출시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판호를 받지 못해 무료로 서비스하다 결국 2019년 5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종료 직후 텐센트가 화평정영을 출시했다. 화평정영은 기존 배틀그라운드 이용자 데이터를 그대로 승계했고, 자동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게임이 화평정영으로 전환된다. 텐센트는 크래프톤의 2대 주주일 뿐만 아니라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공동 제작했고 글로벌 퍼블리싱도 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화평정영을 포함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지난 5월 기준 글로벌 모바일 게임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게임 매출 중 84.8%를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거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과 인도 외교 마찰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인도 내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에서 크래프톤의 아시아 매출 비중이 85%에 달한 것은 화평정영 로열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크래프톤이 그동안 이같은 연관성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해왔다는 점이다. 최근 증권신고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크래프톤은 “그동안 텐센트와 계약관계 때문에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면서 “중국 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화평정영은 별개 게임으로 기술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시장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이후 한국 게임에 판호를 내주지 않고 있는 중국 정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해도 시장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크래프톤 매출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수준의 거짓 해명을 해왔다”며 “IPO 후 투자자 등 시장과 신뢰를 구축해야 할 기업으로서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IPO 과정에서 화평정영이 사실상 배틀그라운드의 우회판호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 내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판호 통제가 워낙 엄격해 중국 대표 기업인 텐센트라 해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당초 텐센트가 중국 내에 퍼블리싱할 예정이었던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지난해 8월 출시를 하루 앞두고 돌연 무기한 연기됐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게임이라고 해도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가차없이 막아선 것이다. 크래프톤 역시 이같은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증권신고서에 “향후 중국 내에서 게임 관련 규제가 확대되거나 중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사업, 재무상태 및 영업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화평정영과 관계가 공식화된 만큼 중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 지 알 수 없다"며 "크래프톤은 국내 시장을 속였지만 텐센트도 중국 정부를 속인 것이어서 최근 게임 산업 규제에 열을 올리는 중국 정부가 이를 곱게 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