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격차가 심해지자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가용 자원을 모두 끌어와 집을 샀습니다. 그러면서 대출이자 감당이 간당간당한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때 금리를 올리면 문제가 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금융권 파산입니다. 부실 대출로 금융권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경제 충격이라는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연일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내놓으면서 금리 인상 준비를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경제학회 회장으로 국내의 대표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정진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 리스크를 우리 경제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급등했고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금융위기 상황이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정 교수는 “거시경제지표 어떤 것을 봐도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일 뿐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도 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며 “하지만 부동산 대출 문제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려 해도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공공근로나 기본소득 같은 포퓰리즘을 강하게 비판하는 그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낮아진 생산성을 올릴 방법에 대한 거대 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담=손철 경제부 차장 runiron@sedaily.com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정 교수는 현 정부가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4년 동안 밀어붙여 각종 경제 리스크를 유발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은 강력히 추진하면서 최저임금을 올렸다가 반대 효과가 나타나 바로 물러났는데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는데도 계속 밀어붙였다”며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이 절대적으로도 올랐지만 격차 문제가 더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산 가격은 오를 수는 있어도 내려오기는 힘든데 그것을 책임감 없이 올려놓았다”고 지적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가계부채는 점차 불어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8년 말 91.8%에서 지난해 말 103.8%로 크게 오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상승 폭을 나타냈다. 이에 과도한 부채 때문에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부채 함정(debt trap)’에 빠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정 교수 역시 “우리도 대부분 주거 마련을 위한 대출인데 금리가 오르면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대출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감당하겠나”라며 “외환위기의 충격에 따른 후유증이 10년 넘게 갔는데 이를 우려해 금리를 함부로 올릴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부동산 대출 부실화로 금융기관이 무너지면서 경제 충격이 발생한 것은 이미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봤지 않나”라고 예를 들었다.
안정적인 금리 인상을 위해서는 부동산이 반드시 연착륙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집값이 더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로 서서히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부동산부터 연착륙해야 다른 경제 문제도 풀리는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집값이 단기간 내 빠른 속도로 오른 만큼 조금만 각도가 예리하게 떨어지면 패닉셀링이 나타날 수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건드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일본이 너무 급작스러운 자산 가격 하락으로 1990년대부터 30년째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도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서울 지역의 주택 수가 가구 수보다 많은 상황에서 대규모 공급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건축 규제를 풀고 다음 정부가 거래세를 완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공급 확대 정책이 한꺼번에 이뤄지면 집값 폭락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부동산 정책이 전환되면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주택 공급 사업이 폭탄이 될 수 있다”며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정부든 새 정부든 완만하게 낮춰 부동산 폭락을 막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집값을 너무 가파르지 않게 떨어뜨릴 구체적 방법으로는 양도소득세 미세 조정을 제안했다. 양도소득세를 인하해야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매물이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의 실증 자료를 참고하면 시장 반응을 보면서 양도소득세율을 탄력 있게 조절해 공급을 조금씩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조금씩 조절하는 정도의 정성스러운 정책이 필요하지 막무가내로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내수 장려라고 봤다. 늘어난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주식·암호화폐 등 자산 시장이 아닌 소비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거나 과소비를 피해야 한다고 했던 말은 지금 우리 경제 상황과 반대되는 것”이라며 “지금은 소비 부족이 문제이지 수출을 아무리 해봐야 고용도 늘지 않고 내수 전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서비스업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입장이다. 그는 “뿌려놓은 돈이 부동산이나 비트코인으로 가는 것보다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소비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며 “다만 고급 서비스가 문화적으로 억눌리고 사치라는 이름이 붙어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는 서비스업이 발달할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서비스업 발전을 막고 있는 촘촘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규제를 하나만 풀려고 해도 이익단체가 나서는데 거기에 굴복하고 있다”며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표가 되는 결집력 있는 집단에 주는 혜택이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했다. 소비자가 불편해도 대형 마트의 영업을 10년 넘게 제한하는 것도 소상공인에 비해 소비자들의 결집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익단체에 정부가 편파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전체 경제를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포퓰리즘의 또 다른 형태로는 지난 10년간 이어진 대학 등록금 동결을 꼽았다. 정 교수는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인데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교수들이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용역만 찾아다니게 되면서 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대학 등록금 동결은 청년층의 표를 얻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포퓰리즘”이라고 꼬집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슈가 될 만한 사안도 아닌데 과열됐다고 잘라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가 기본소득을 할 수 없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그는 “행정의 비효율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선별하는 것보다 눈 감고 다 주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행정 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이미 실행 중인 제도가 있다”며 “중동 국가처럼 석유가 있어 재원이 거의 공짜로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핀란드도 했다가 물러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볼 수 있는 정부의 공공 일자리 사업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생산성이 없거나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공공근로에 대해 이례적으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단기 비숙련 일자리를 늘려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정부 예산을 써서 돈을 지급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며 “공공근로는 사실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셈인데 경제학자 눈에는 좋게 보이기 어렵다”고 날을 세웠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들이 사람을 쓰는 것이 유리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고용을 많이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틀린 말”이라며 “정부 부탁으로 필요도 없는 사람을 뽑으면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조심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정부 만능주의’를 꼽았다. 특히 오는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고 한 한국판 뉴딜의 경우 방향은 좋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에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나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 등 세 가지를 버려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면 경쟁이 사라지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되 일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선이 치러지는 내년에 필요한 경제적 화두로는 생산성 향상을 꼽았다. 낮아진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밥 안 먹고 배부르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경제정책은 결국 실물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인데 지금은 너무 땜질만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체를 보는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