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친구 집에 얹혀 살며 눈치 밥 먹고 싶지 않고, 고시텔 얇은 벽 너머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에 시달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작더라도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에서 마음 편히 씻은 후 잠들고 싶다. ‘반의 반만큼 접힌 공간이 아닌, 나 만을 위해, 내 가치만큼 존재해줄 집’에서 살고 싶다는 게 과욕이냐는 청년들의 호소에 누군가가 잔인한 미소와 함께 이런 말을 던진다. “아시죠, 자본주의.”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42)이 데뷔 후 첫 소설집을 냈다. 출판사 창비를 통해 펴낸 ‘타인의 집’이다. 전세 아파트를 주인 몰래 다시 쪼개 세 놓은 셰어하우스 안에서 벌어진 촌극을 다룬 표제작 ‘타인의 집’을 포함해 그간 꾸준히 발표했던 단편 작품 여덟 편을 한데 모았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짧지만 묵직하다. 우리 사회를 향해 때로는 정면에서, 때로는 측면에서 강한 펀치를 날린다. 청년 주거에서 고령화, 1인 가구, 이민자 혐오, 세대 갈등, 여성의 출산과 육아까지 아우른다. 전혀 괜찮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은 척 꾸역꾸역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의 자화상 같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손원평은 표제작이자 가장 최근 작품인 ‘타인의 집’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작년부터 ‘사다리가 끊긴 세대’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며 “청년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로 인해 모두 집에 더 머물게 됐고, 그 과정에서 집이란 공간의 의미가 확장됐다”며 “그런 가운데 집값까지 올랐다. 주목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주거가 청년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을 소유한 사람에게도 집은 계속되는 문제다. 처한 상황에 따라 더 넓은 집이 필요하기도 하고, 더 쾌적한 공간으로 옮기고 싶은 욕구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의 출발선에서부터 당장 한 몸 편하게 누울 최소한의 공간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이다.
손원평은 “사방의 벽이 나를 향해 밀려드는 느낌을 받는 청년은 마음이 위축되는 걸로 모자라 쪼그라드는 고통을 느낄 것”이라며 “집은 단지 ‘부의 지표’나 ‘성공의 징표’가 아니다. 자신 만의 공간을 점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 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개체가 가진 본능 같은 것”이라고 했다.
책 속 또 다른 작품 ‘아리아드네 정원’이 다루는 미래 사회 문제도 한없이 무겁다. 섬뜩할 정도다. 노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미래 사회, 노인들은 서로 다른 등급으로 매겨져 요양원이라기 보다는 수용 시설이나 다름 없는 주거 공간에서 살아간다. 가족이 없으면 안락사도 선택할 수 없다. 청년들은 국가가 노인 부양에 세금을 다 쓴다고 분노하고, 인구 감소 대응책으로 유입이 허용됐던 이민 가정 2세들은 이중 차별을 받는다고 불만을 키운다. 시설에 갇힌 노인들도, 미래를 갖지 못한 청년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손원평은 “우리 세대가 할머니가 됐을 때를 상상했다”며 “현재 조금씩 싹이 트고 있는 문제들이 그때 가면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다. 사회 비판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눈에 보이는 미래”라고 설명했다.
다른 작품들 역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면,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독자를 이끈다. 손원평은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는 하나, 우리 모두 여러 벽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여유는 없지만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로도 시선을 돌리면 거꾸로 내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원평은 앞으로도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강렬한 청소년 소설 ‘아몬드’, 달달한 연애 소설 ‘프리즘’까지 작가로서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 그는 올 하반기에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동화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인해 치유 받는 이야기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좁은 주제에 천착하는 작가가 되기 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가 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