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극악의 공포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 직접 기획과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 원안을 집필한 영화 '랑종'은 신비하면서 기이한 태국의 샤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없는 공포로 몰아넣는다. 프로듀서로 변신한 나홍진 감독과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만남이 관객들에게 통할지 궁금해진다.
2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랑종'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나홍진 프로듀서가 참석하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화상 연결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그린 영화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어지는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으로,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곡성', '황해', '추격자' 등 히트작을 남긴 나홍진 감독은 '랑종'의 프로듀서이자 원작자로 돌아왔다. 반종 감독은 태국 호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데뷔작 '셔터'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졌다. 한국과 태국의 유명 감독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랑종'은 주목받고 있다.
나 프로듀서가 '랑종'의 배경을 태국으로 선택한 것은 반종 감독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이 '곡성'과 흡사해지는 걸 전혀 원치 않았다. 원안을 쓰고 났더니 무속을 담는 장면이 많을 텐데 그 장면에서 '곡성과 어떻게 차별화를 둘 수 있겠냐'는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역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들은 큰 이미지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외로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습하고 웅장한 숲,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생각났다"며 "5년 전에 만났던 반종 감독님이 바로 생각났다. 만약에 감독님이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면 그 나라에서 촬영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반종 감독은 나 프로듀서의 굉장한 팬이었다고. 그는 "나 프로듀서는 나의 아이돌이다. 5년 전 태국 방콕 예술제에서 영화 '추격자'를 상영하면서 나 프로듀서를 초대했었고, 난 워낙 팬이었기에 그때 제작했던 내 DVD를 선물로 드렸다"며 "그때는 나 프로듀서가 나에게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원안을 받았을 때 그동안 접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영화라서 더 흥분이 됐고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코로나19 시기에 타국과 협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 프로듀서는 반종 감독에 대한 신뢰감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나 프로듀서는 "감독님이 촬영한 것을 받아보면서 긴장도 많이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게 처음이기 때문"이라면서도 "감독님이 매일같이 촬영된 내용을 보여주고 시간이 나면 꼼꼼히 말씀해 줬다. 코로나19 때문에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내가 마치 현장에 가있는 것처럼 수고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연출에 집중하는 동안 난 서사에 집중을 했다. 상호 간에 가장 크게 얻은 이익이 아닐까 싶다"고 만족해했다.
나 프로듀서가 만든 원작을 태국으로 옮기면서 양국의 무속 세계관에 차이점에 집중이 됐다. 나 프로듀서는 "워낙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을 모시는 다양한 분들이 있기에 원래 한국과 태국의 차이는 못 느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 차이를 느꼈다"며 "반종 감독님이 연출을 정말 잘 해주셔서 영화 속에서 연출된 무속인들의 모습과 행위의 차이가 느껴졌다. 감독님께서 2년에 가까이 태국의 무속을 취재하고, 영화에 잘 담아준 덕분에 이런 차이가 느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반종 감독은 양국의 무속신앙에 유사한 점을 더 많이 발견했다고. 그는 "시나리오 원안을 받았을 때 걱정이 많았다. 내가 태국의 무당이나 무속신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나 감독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리서치 하는 시간을 가졌다. 리서치를 하면서 굉장히 흥분되고 떨리는 기분이었는데, 한국과 태국의 무속신앙이 사당히 비슷한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랑종'은 나 프로듀서의 전작 '곡성'과 비교되기도 한다. 반종 감독은 '곡성'에서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연상될 수 있게 꾸민 것은 아니라고. 그는 "태국의 토속신앙을 조사하기 위해 태국 북동부 리서치를 했었고, 그쪽의 무속신앙을 보면서 영감을 받아 장면들을 그려냈다"며 "'곡성'뿐만이 아니라 나 프로듀서 작품의 팬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맞다"고 전했다.
작품은 금기시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높은 수위로 인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나 프로듀서는 "나는 말리는 입장이었다. 감독님의 의견에 내가 모두 동조하고 동의했다면 상영이 안 됐을 것"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감독님께 조심스럽게 낮춰보자고 이야기했는데, 감독님이 회의가 끝나고 며칠 있다가 또 말씀한다. 그래서 '하고 싶다면 그대로 가야 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반종 감독 또한 "수위와 관련해 나 프로듀서와 굉장히 많은 언쟁이 있었다"고 밝히며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절대로 잔혹함이나 선정적인 장면을 팔아서 영화를 흥행시키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내용과 관련 없는 선정적인 장면을 넣지 않았고, 수위 또한 이 스토리에 꼭 필요한 것을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귀신에 빙의되는 밍 역을 맡은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은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작품의 섬뜩함을 배가한다. 반종 감독은 밍 역의 캐스팅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며 "'태국의 유명한 배우는 절대 안 된다. 이 역할에 맞는 배우여야 한다'고 의견을 맞췄다.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면서 이 배우가 도드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굉장히 나이가 어리고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앞으로 미래가 창창한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가이드라인만 가지고 촬영을 했는데, 대사 같은 건 실제에 가깝게 하기 위해 배우가 만들었다. 나릴야는 후반부 장면을 위해 10kg 가량 몸무게를 빼고, 힘들게 촬영했는데 지금은 원상태로 돌아와 예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호러 영화계 거장인 두 사람은 귀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정반대였다. 반종 감독은 의외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그는 "하지만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볼 때는 공포를 느끼고 일상생활에서는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토속신앙도 믿지 않지만 그렇게 시작해서 리서치를 하면서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돼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용을 대형 화면에 담아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반면 나 프로듀서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겁이 되게 많고 공포 영화 못 본다. 현실 속에서 귀신이 무서워서 집에도 빨리 가는 편"이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그는 "'곡성'을 준비할 때 (귀신의 존재에 대해) 정말 알고 싶었다. 무속인이 모여 기도를 올리는 절에 가서 무속이들과 몇 달 함께 있었다"며 "'뭐가 들리고 뭐가 보이고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는데 무속인들마다 다 다르다고 하더라. 결론적으로 귀신이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종 감독은 2009년 이후 호러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다. 2014년 '피막'으로 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로맨스 영화였다. 그는 12년간 호러 영화를 연출하지 이유에 대해 "공포 영화에 대한 회의감도 느끼고 더 이상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랑종' 시나리오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작업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공포영화와 차별화한 것은 한 여자가 무당이 되기 위한 드라마를 실제와 가깝게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원래 연출할 때 디테일이 다 나와있는데 이번에는 가이드라인만 갖고, 실제 카메라 감독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촬영을 했다"고 현장감을 강조했다.
나 프로듀서 또한 직접 '랑종'을 연출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작품이 늘어갈수록 생기는 연출에 대한 고민 때문. 그는 "연출할 마음은 진심으로 없었다"며 "자신의 작품이 쌓여갈 때마다 단독적인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작품이 늘어날수록 자신 작품만의 느낌이 반복되고 강해져 갈 텐데, 그것을 스타일이나 시그니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저는 그런 게 없으면 좋겟다고 생각한다. '곡성'과 유사한 장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걸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한국과 태국 대표 호러 영화계 거장이 만나 완성된 '랑종'은 오는 14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