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적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돈, 소액절도범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이유죠” [이웃집 경찰관]

■서울 강남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이환윤 경사

소액·자전거·ATM 절도 전담하는 ‘생활범죄수사팀’

“금액 적어도 수사방식은 강력사건과 다를 것 없어”

“코로나로 어렵게 모은 대학 등록금 찾았을 때 뿌듯”

범인 안 잡히면 ‘우연히 마주쳐라’ 되뇌는 ‘천상 형사’

이환윤 강남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경사. /이호재기자이환윤 강남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경사. /이호재기자




매일같이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를 다룬 뉴스를 자주 접하지만 살면서 실제로 맞닥뜨릴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자전거나 지갑, 현금자동인출기(ATM)에 꽂아놓은 돈을 도둑맞는 등 일상에서 사소한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가 그렇다. 특히 소중한 의미를 간직한 물건이나 꼭 필요한 돈을 잃어버렸을 때 막막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한국에는 이러한 생활범죄를 도맡아 수사하는 경찰관들이 있다. 이른바 ‘생활범죄수사팀’ 형사들이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만난 이환윤 경사는 2009년 입직 후 초기 2년여간 기동대와 파출소 근무를 제외하면 줄곧 형사과에 몸담았다. 형사팀과 형사지원팀은 물론 강력팀까지 거치면서 형사 사건에 잔뼈가 굵었다. 이 경사는 2018년부터 3년째 생활범죄수사팀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과거에는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팀에서 절도사건을 함께 맡다 보니 큰 사건이 터지면 작은 절도범죄는 뒷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생활범죄수사팀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금액 100만원 이하나 자전거·ATM 관련 절도 사건들을 맡고 있는 생활범죄수사팀은 현재 전국 257개 경찰서 중 절반이 넘는 14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국 생활범죄수사팀 소속 676명의 경찰관들이 작년 한해에만 총 1만 8,568건의 생활범죄를 처리했다.



피해금액이 적다고 해서 수사도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경사는 “금액만 적을 뿐이지 수사방식이나 들이는 노력, 사건해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여느 강력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1명당 한 달 평균 30여 건의 생활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강남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형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에서 보내는 이유다. 이 경사는 “방범용 CCTV로 범인의 경로를 다 확인하기 힘들 때는 범행 현장에 가서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민간시설의 CCTV를 봐야 한다”며 “가끔 협조를 해주지 않는 업주분들이 계실 때는 ‘빨리 보고 갈테니 한 번만 보여달라’며 읍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신고하는 시민 분들은 범인 검거를 위해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다 보니 ‘왜 CCTV에 찍혔는데 못 찾냐, 신고한 금액이 적아서 수사를 안 하는 것이냐’라고 하실 때도 있다”며 “일회용 우산을 찾아달라는 신고가 들어와도 똑같이 수사에 임하는데 그런 오해를 풀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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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윤 강남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경사./이호재기자이환윤 강남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경사./이호재기자


누군가는 ‘잡아봤자 자전거나 화장품 도둑 아니냐’며 생활범죄수사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활범죄수사팀이 곤경에 처한 시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보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접수된 신고가 그랬다. 한 시민이 딸의 등록금 700여 만원을 은행 ATM에 꽂아놓고 전화를 하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돈이 사라진 것이다. 이 경사는 “사건기록을 받아보니 ‘코로나19로 힘든 와중에 마련한 딸의 등록금’이라는 내용이 있었다”며 “추적이 늦으면 범인이 이미 돈을 써버려 피해변제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어 ‘이 사건은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경사가 신속하게 범인을 찾아낸 덕분에 피해자는 한 달여 만에 피해금 전액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 경사는 “나도 딸을 키우는 아빠라 그런지 자녀의 등록금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막막할지 공감할 수 있었는데 사건이 잘 해결돼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범죄수사팀에서 일을 하다보면 ‘작은 사건인데도 경찰이 이렇게까지 수사를 해주는 줄 몰랐다’며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다”며 “누군가는 생활범죄수사팀이 맡는 사건을 평가절하하지만 나름대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경사가 처음 경찰을 꿈꾼 이유는 나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래서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 적어낸 그의 꿈은 언제나 형사였다. 이 경사는 “찾고 싶은 범인이 있을 때면 매일 ‘제발 마주치게 해달라’고 되뇌고 갑작스레 마주쳐서 검거하는 상상을 계속 한다”며 “CCTV를 수없이 보면서 범인 특징을 외우고 다니다 보면 우연히 마주칠 때가 진짜로 있다”고 전했다. 상습적으로 오토바이 물품을 훔친 배달부를 이 경사의 차 바로 앞에서 마주친 것이나 잠복근무 중 별다른 소득 없이 복귀하던 길에 연쇄절도범을 만난 것은 ‘우연한 행운’이라기보다는 ‘준비된 결실’이었던 셈이다. “기필코 잡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정말 범인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지금도 가장 좋다”는 이 경사는 학창 시절의 초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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