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150년 전 경복궁 화장실, 정화 시설 갖추고 있었다"

문화재청, 화장실 터 발굴 결과 공개

"입수구, 출수구 갖춰…현대식과 유사"

8일 오전 서울 경복궁 동궁 권역 남쪽 대형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적으로 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오기는 처음이다./연합뉴스8일 오전 서울 경복궁 동궁 권역 남쪽 대형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적으로 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오기는 처음이다./연합뉴스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옛 건축 구조나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발굴 사실을 공개하면서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경복궁 내 화장실의 존재는‘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 ‘북궐도형(北闕圖形)’, ‘궁궐지(宮闕志)’ 등의 문헌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경복궁 화장실은 최대 75.5칸이 있었는데,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돼 있었다. 특히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闕內各司)와 동궁(東宮) 권역 등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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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동궁에서 일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궁 권역 건물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에서 약 15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로서는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사진은 경복궁 동궁 권역 화장실 유적 내부 퇴적 양상. /사진제공=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에서 약 15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로서는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사진은 경복궁 동궁 권역 화장실 유적 내부 퇴적 양상. /사진제공=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건 유구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과 씨앗이 검출된 데서도 추정할 수 있다. 연구소 측은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돼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돼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연구소 측은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며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화장실 발견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라고도 전했다. 이 밖에 화장실 규모는 4~5칸으로,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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