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은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나라 중 하나였다. 넓게 퍼진 반기업 정서에는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 같은 기업 성장사의 고질적 유산이라는 배경이 자리했다. 투기와 편법으로 축재하고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한 기업의 행태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1980년대 리크루트 수뢰 사건, 1990년대 대형 금융 비리를 거치면서 일본 국민의 반기업 정서는 커져만 갔다.
일본인들의 이 같은 정서는 2000년대 들어 ‘기업 친화적’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반전의 계기는 일본 경제 단체와 기업들이 만들었다. 적극적인 환경 및 소비자 대책과 함께 대학 내 경제 교육 강좌 후원, 교원 민간 기업 연수 등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일본 내 반기업 정서가 누그러졌다.
실제로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사가 2001년 세계 22개국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반기업 정서 조사에서 일본의 경우 53%가 ‘국민들 사이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다’고 답변해 한국(28%)보다 반기업 정서가 훨씬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경제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 기업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완화된 것이다.
교육으로 반기업 정서를 설득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영국은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로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졌고 기업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다. 이 시기 총리에 오른 마거릿 대처는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핵심 가치들에 대한 문화적 반감이 영국의 형편없는 경제적 성과의 원인이라고 분석해냈고 이를 근간으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더불어 대규모 공기업 민영화를 진행하며 노동자와 일반인들의 주식 보유를 독려했다. 이어 국가 소유의 주식을 민간인에게 넘기면서 회사 종업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줬고 이것으로 국민이 기업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됐다.
2000년대 들어 영국에 반기업 정서가 다시 악화했을 때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정부였다. 영국 정부는 1999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기업의 역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기업가 정신 제고 캠페인(enterprise insight)’을 추진했다. 2002년에는 기업 CEO들을 모아 ‘CEO 원탁회의’를 추진해 대기업들이 그 지역 연고의 중소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도록 유도하는 등 기업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2001년 엔론 회계 부정 스캔들과 닷컴 거품 붕괴 이후 반기업 정서에 휘말렸던 미국은 기업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CEO는 컴퓨터를 한 대 팔 때마다 6달러씩 쌓아 나무를 심자는 ‘나를 위한 나무 한 그루’ 캠페인을 벌였고 월마트의 리 스콧 CEO는 근로자 최저임금 인상을 의회에 촉구했다. 이 밖에도 미국은 민간 주도로 체계적인 경제 교육, 청소년 창업 지원, 대학 등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을 강화하는 데 애를 썼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의 정당한 보상인 ‘이윤’의 개념을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어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기업 규제 강화로 이어진다”며 “반기업 정서는 이념이나 감성보다 지식과 정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