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주도 성장으로 인한 저숙련 노동자들의 고용 악화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치권이 예비타당성 면제를 통해 사회간접자본(SOC) 폭주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 예비 후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의 틈새를 비집고 포퓰리즘 공약이 유권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선 예비 후보들이 앞다퉈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서 대선 경선이 복지 경선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치평론가들은 유권자들이 국회가 재정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만큼 건전한 재정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폭주를 진정시킬 수 있는 해법이 결국 유권자의 참여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작부터 재정 의존성 키운 ‘소주성’=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15년 정부가 제출한 이듬해 예산안에 대해 “국가 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40%가 깨졌다”며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맹비난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집권 후에는 “40%의 근거가 무엇이냐”며 재정 당국을 압박했다. 이를 두고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현 정부 경제정책의 출발점 자체를 문제의 시작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을 높이고 복지 지출을 확대하면 소비가 촉진돼 경제가 성장한다고 한 소득 주도 성장이 문제의 출발점”이라며 “저숙련 근로자가 많아 고용을 줄이는 효과가 컸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 재정에 의한 경기 부양 효과는 작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고용 악화로 취약 계층이 늘어 복지 지출은 그만큼 더 늘었고, 재정 효과를 과장해 재정 악화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흐려지고 재정 지원 의존 의식은 커졌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로 이 교수는 “앞으로 금리 인상 시기인 만큼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이 늘어났을 때 국가 재정이 완충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무력해진 ‘예타’…與, SOC 폭주=현 정부는 출범 이후 SOC 지원까지 폭주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예타 조사 면제 사업 규모만도 총 97조 원을 넘겼다. 예타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마련된 것으로 현 정부의 면제 사업 규모는 역대 최고다. 임기 말 예타 면제 사업까지 더해지면 그 규모는 10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역대급 예타 면제를 남발하면서 국가 재정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는 지난해까지 총 120건, 사업비 규모는 97조 3,000억 원으로 이명박 정부(60조 3,109억 원), 박근혜 정부(23조 6,169억 원) 때 면제됐던 예타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대선·지선 앞두고 與野의 돈 풀기 경쟁=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정치권이 재정 건전성은 외면한 채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는 6개 시군에서 농민 개개인에게 현금을 주는 ‘농민기본소득’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농민기본소득 지급이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될 경우 수천억 원의 혈세 투입이 불가피하다. 농민기본소득 실험에 참여하는 6개 시군 중 이천시(51.0%) 외에는 재정 자립도가 20%대에 머물러 있지만 현금 지급부터 공언한 셈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안심소득(오세훈 서울시장)’ ‘공정소득(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을 제시하며 기본소득에 맞불을 놓은 상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제안을 덜컥 받았다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의 원칙과 가치까지 훼손하며 논란을 키운 것은 결국 선거를 의식해서였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세대에 빚 폭탄을 안기는 ‘퍼주기식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견제해오던 야당이 스스로 원칙과 소신을 저버릴 경우 견제 장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길 잃은 재정 수호자…시민 참여 절실=행정학자 에런 윌다브스키는 정치인과 공공 기관의 관료를 ‘예산 지출자(spender)’와 ‘재정 수호자(guardian)’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그들 간의 견제와 균형을 파악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예산 과정과 재정 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국회가 기본적으로 ‘재정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재정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국회마저 포퓰리즘 법안을 발의하고 대선 주자와 동조되는 현상은 돈을 뿌리는 이른바 매표 행위에 동참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포퓰리즘 공약이 우후죽순 나오는 상황에서 재정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시민들의 각성 있는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