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공화당식 독재주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독재정권 엘리트들 충성·아첨처럼

소심한 공화당 의원 비굴하게 행동

자체 정치영역 구축해 나라 위협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까지 부추겨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필자는 사회과학의 유용성을 굳게 믿는다. 그중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는 비교를 통해 특정 현상 간의 유사성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조명하는 비교사회학의 열렬한 팬이다.



필자가 정치학자인 헨리 패럴의 조언을 좇아 개인 숭배에 관한 사회과학 분야의 자료들을 꼼꼼히 들여다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패럴은 뉴질랜드에 기반을 둔 연구원 세비에르 마르케스의 논문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실제로 그의 논문은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르케스가 쓴 ‘개인숭배 생성 메커니즘’은 로마 제국의 칼리굴라 황제부터 북한의 김일성 일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재 정권의 정치 엘리트들이 취하는 행동 사이의 뚜렷한 유사성을 짚어낸다. 그들이 처한 문화와 물리적 환경이 큰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독재 정권의 엘리트들은 마르케스가 ‘충성 신호’와 ‘아첨 인플레이션’으로 명명한 행동을 보인다.

충성 신호는 경제학에서 끌어온 개념이다.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특성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가며 무의미한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투자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 사원들은 말도 안 되게 긴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낸다. 추가 근무로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독재 정권에 속한 엘리트들의 충성 신호는 지도자와 그가 추구하는 어젠다를 합리화하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역겨운 충성심 과시를 포함한다. 그 같은 주장이 허황되거나 자기파괴적일 때, 혹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수치가 될 때 ‘허튼소리’와 ‘망발’은 지도자를 향한 강력한 충성 신호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해치면서까지 지도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군에게 충성심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런 종류의 충성 신호가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면 지도자에게 충성심을 입증하려는 사람들은 같은 무리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아첨 인플레이션은 여기서 나온다. 지도자를 용감하고 현명할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완벽하며 놀라운 지능까지 겸비한 건강 전문가 겸 노벨상 수상자급의 경제 분석가로 둔갑시킨다. 지도자가 이런 덕목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첨 효과를 더욱 높여준다.



이 모두가 귀에 익숙하지 않은가. 물론 그럴 것이다. 최소한 한동안 폭스뉴스를 시청했다든지, 린지 그레이엄이나 케빈 매카시 같은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을 들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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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 동안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공화당이 이미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를테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공화당이나 독일 기독민주당과 현재 미국의 공화당은 완전히 딴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화당은 독재국가들의 집권당을 닮아가고 있다.

공화당이 이들과 다른 한 가지는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공화당은 의회도 백악관도 장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반대한다거나 트럼프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인들이라 해서 집단 수용소로 보내지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당내 지위를 잃거나 다음 선거의 당 후보 경선에 나서지 못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소심한 공화당 의원들은 칼리굴라의 신하들처럼 비굴하게 행동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충성 신호들은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실제로 향후 몇 개월 내에 공화당 의원들의 충성 신호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초반에 성공적이었던 백신 접종이 정체된 것이 전적으로 정파주의 탓만은 아니다. 소수 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은 정치와 무관한 이유로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핵심 이유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공화당 정치인들과 공화당 성향의 인플루언서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예방접종 사보타주 시도에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석권한 주와 지금의 백신 접종률 사이에는 놀랄 만한 반비례 관계가 존재한다.

어쩌다 생명을 구하는 백신이 이렇듯 정치화했을까. 블룸버그의 조너선 번스타인이 지적한 대로 지금 공화당 의원들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자신이 당 이념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당이 이미 깊숙이 빠져든 복잡하고도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백신 접종 반대처럼 광적이고 파괴적인 정책을 옹호하는 식의 허무주의만이 충성심을 보여주는 유일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백신에 대한 적대감이 충성 신호의 한 형태가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공화당이 ‘만악의 뿌리’라거나 민주당이 성인들의 집단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특수한 이익집단의 힘이나 회전문의 유혹에 취약하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공화당은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공화당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충성심의 과시로 좋은 정책 구상 혹은 기본적인 논리를 초월하는 자체적인 정치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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