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퇴임 대통령 경호·방호 인력을 늘린 가운데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만을 위한 조치인지, 수감 중인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감안한 조치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제도 적용을 받을 전직 대통령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임기 내 특별사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단 사면에 대한 언급은 없이 “의무경찰의 단계적 폐지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지지율과 정권 재창출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 전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文 퇴임 후 사저 경호 인력 증원…“의경 폐지 때문”
문 대통령은 3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화상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통령경호처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퇴임 대통령 사저 경호 인력 27명에 더해 방호 인력 38명을 증원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 개정안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입법예고할 때부터 논란이 됐다. 사실상 문 대통령 퇴임 준비 때문에 바꾼 법령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도 이날 논란을 의식한 듯 “대통령경호처의 경호지원 인력 중 사저 방호 인력이 증원된 것은 의경 폐지로 인해 의경이 담당하던 업무가 경호처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라며 “국민들의 세금이 쓰이는 만큼 꼼꼼히 살피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도 같은 날 기자들에게 공지문을 보내고 “경호 인력 27명은 역대 퇴임 대통령에 적용되던 최소 편성 인원에 준하는 것”이라며 “방호 인력은 경찰청 소관의 의무경찰의 단계적 폐지에 따라 경호처로 이관돼 결과적으로 인력이 증원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방호 인력 38명은 이전 퇴임 대통령의 방호인력 1개 중대 120명(20명 정도의 경찰관, 100명 정도의 의무경찰)의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한 것”이라며 “경호 인력과 방호 인력이 내년 5월 근무지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생활할 경남 양산 사저 공사는 주민 반대로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부부는 지난해 사저 건립을 위해 14억7,000만원을 들여 평산마을 일대 토지와 주택을 구입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사저 완공을 목표로 하고 경호시설 부지 매입에 22억원, 경호동 건축에 39억8,9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일각선 임기 내 朴·MB 사면 고려說…박범계 "그만 얘기하라"
일각에서는 이번 경호 인력 증원 조치가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사면과도 연계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직 퇴임 전인 문 대통령을 제외하면 전직 대통령 대다수가 사망·수감 상태라 경호 혜택을 받을 만한 이가 소수라는 점에서다. 현재 전직 대통령으로 경호 대상이 된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노태우 전 대통령 부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등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았거나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사람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한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 전 대통령 역시 지난달 27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치료를 마치고 지난 2일 안양교도소에 복귀했다. 사면 등의 별도 조치가 없다면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은 이 전 대통령은 95세인 2036년 11월 만기 출소한다. 총 22년의 징역형을 확정받은 박 전 대통령은 87세가 되는 2039년에 교도소를 벗어난다.
정부에서는 일단 두 사람과 관련한 ‘광복절 특별사면’ 가능성에는 선을 긋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대통령께서 방역과 민생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전직 두 분 대통령 사면은 이번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게 실무 장관의 입장”이라며 “그 분(박 전 대통령)이 지금 아프셔서 병원에 가 계신 데 자꾸 아닌 걸 물어보면 그분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그 얘기는 그만 하시라”고 반박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그러실 일은 없겠지만 (지시하시면) 법무부는 바로 정해진 절차를 따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지난번에도 드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서도 박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의에 “8·15가 내일 모레이고 내가 사면심사위원장인데 현재까지 대통령의 뜻을 받지는 못했다”고 답한 바 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아직 지시가 없었다는 뜻이냐”고 거듭 질의하자 “8·15 특별사면은 시기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아주 최소 규모의 원포인트 특별사면이 라면 모를까, 현재까지 특별한 징후가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국민 과반은 여전히 ‘사면 반대’…이재용과 대비
두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서는 여론 역시 여전히 싸늘한 상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업체가 지난달 26~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에 따르면 두 전직 대통령의 광복절 특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56%로 집계됐다. ‘찬성한다’ 의견은 38%에 그쳤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반대(79%)가 찬성(18%)보다 월등히 많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로 찬성(70%)이 반대(27%)보다 많았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사면에 대한 여론과는 크게 대비되는 결과였다. 같은 조사에서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은 두 전직 대통령의 두 배에 달하는 70%로 조사됐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22%에 불과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힘 지지층 모두 59%, 94%씩 찬성 의견을 낸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무당층에서도 60%가 찬성했다.
이 부회장과 달리 두 전직 대통령의 출소는 경제 성장에도, 사회 정의 고취에도 긍정적 효과를 내기 힘들 것으로 측정된 셈이다. 같은 기관이 지난 4월26~28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론은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응답(52%)이 ‘국민 통합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응답(41%)을 오차범위 밖에서 웃돌았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2일 “광복절 특사를 단행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특별사면과 관련해서는 현재 확인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21일과 22일에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7월22일 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등에 대한 사면론을 두고 “아는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고, (그런 기류를) 느낀 바도 없다”고 강조했다. 사면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의견을 참모들과 공유한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광복절 특사를 단행한 적이 없다.
임기 내 가능성 관심…지지율·여론이 관건
다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가능성을 여전히 정치적 카드처럼 언급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지금 현재처럼 수형 생활을 하고 계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김영삼 전 대통령께 건의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했던 것처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민 대통합의 차원에서 사면을 행사해 주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6일에도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문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원한다면 바로 오늘이라도 박 전 대통령 사면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권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대선캠프 남영희 대변인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달 28일 민주당 본경선 첫 TV토론회 ‘OX 스피드 퀴즈’에서 이낙연 후보는 ‘전직 대통령 사면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OX 판넬을 세로로 들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을 표했다”며 “이명박·박근혜 사면에 대한 입장 여전히 '세모'냐?”고 비꼬았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올 초 사면론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고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점을 공격한 것이었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같은 달 2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자신이 주도한 박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며 탄핵이 잘못됐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며 “홍준표 의원은 사면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올 거라고 하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낸다. 무리하다 못해 무례하다”고 비판했다.
차기 대선 구도의 윤곽이 뚜렷해질 수록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논의도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면에 찬성하는 여론이 늘어나는지, 문 대통령 임기 말 지지율이 어떻게 흐르는지, 차기 여권 대선 주자의 당선이 유력한지, 중도·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이 크게 이탈하지 않는지, 무엇보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정치적 화합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 등이 문 대통령 결심에 변수가 될 것이란 얘기다.
특히 박 전 대통령 사면은 보수의 결집과 분열을 모두 유발할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국정농단’ 사건을 직접 수사한 윤석열 전 총장에게도 호재나 악재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21일 청와대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초청한 자리에서 사면 건의를 받고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수감돼 있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고 고령인 두 분 모두 건강도 안 좋다고 하니 안타깝다”면서도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