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하고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감소하면서 막판에 상승마감했는데요. 브래드 맥밀런 커먼웰스 파이낸셜 네트워크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플레이션은 최소한 (상승세가) 중단됐다”며 “전체적인 수치와 근원 인플레 모두 안정화하거나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멈출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인플레가 정점을 지났을 수 있고 갈수록 낮아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플레와 관련해서는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있습니다. 여기에 전날 한국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내용도 있는데요.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이 본격적으로 정치무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양상이 달라진 물가상승 논쟁, 전해드립니다.
바이든 “물가상승률보다 가격 빨리 올리는 제약사에 페널티”…물류적체도 해소 노력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메디케어가 약값을 낮출 수 있도록 제약사와의 협상을 허용하고 물가상승률보다 가격을 빨리 올리는 업체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의회에 촉구했는데요. 대통령 요구에 민주당도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이 새로운 건 아닙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 밑그림인 ‘빌드 백 배러(Build Back Better·더 나은 재건)’에 나와있는 것이지요. 바이든 대통령도 수차례 약값 문제를 거론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시 이를 언급하면서 강하게 밀어부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의 의료문제 해결만이 목적이 아닌 인플레와의 싸움에 연방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도 “미국의 약값이 다른 나라보다 2~3배 비싸다”고 강조했죠. 특히 물가상승률을 언급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는 어제 백악관이 OPEC+에 “높은 유가는 세계경제 회복에 방해가 된다”며 증산을 요구한 것과 맞물립니다. 증산을 통한 가격안정화로 세계경제의 회복을 돕고 이를 통해 미국도 이익을 보겠다는 의도가 있지만 최근 문제가 되는 인플레 방어목적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어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기름값과 관련해 반경쟁적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고 캘리포니아의 롱비치와 로스앤젤레서 항구의 물류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물류적체로 인한 비용증가 및 가격상승 요소를 최대한 없애겠다는 말입니다. 연달아, 그것도 물가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백악관이 관련 메시지를 내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 참모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각심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폭스뉴스 “국민 86% 인플레 우려” 정치문제화…“바이든이 미국 중산층을 망친다” 주장도
이같은 상황 변화의 배경은 쉽게 짐작 가능합니다. 7월에도 CPI가 전년 대비 5.4% 급증하면서 물가상승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안이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3조5,000억 달러짜리 안이 대기 중입니다. 아무래도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전해드렸듯 물가상승이 피크는 지났으며 점점 내려가지 않겠느냐는 게 월가의 지배적인 분위기입니다만 임대료와 델타변이 같은 리스크 요소가 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이 물가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한 어제, 폭스뉴스에서 ‘높은 물가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제목의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날 오전에 나온 CPI 발표를 고려한 것이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폭스뉴스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등록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인플레를 우려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중 ‘극도로 우려한다’가 53%에 이릅니다. 우려하지 않는다는 14%에 그쳤는데요. 장바구니 물가와 기름값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들도 각각 70%와 67%였습니다.
‘인플레를 우려한다’는 부정적 답변 비중(86%)은 폭력적 범죄(81%), 중국의 부상(73%), 인종주의(66%)보다 크게 높습니다. 경제 관련 문제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6월 조사(56%) 때보다 3%포인트 떨어진 53%로 나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 역할을 했던 케일리 메커내니 전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여론조사 결과는 바이든 정부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폭스뉴스와 매커내니 전 대변인의 정치성향이 뚜렷하지만 핵심은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난 것과 관계없이 이것이 정치문제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의회에서도 수차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이제 물가상승 문제를 미디어에서 대중적으로 다루면서 핵심논쟁 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죠.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이 중산층을 망친다는 주장을 폅니다.
바이든 인플레 관리에 상승세 추가 둔화 가능성…강하게 나오면 시장 리스크 커질 수도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 목표는 중산층 재건입니다. 경제와 외교, 통상 정책이 모두 중산층 재건을 위한 것입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과 제조업 회귀, 대중 통상정책 등이 모두 중산층 재건의 하부 전략입니다.
그래서 공화당의 “인플레가 중산층을 망친다”는 지적이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상승이 월급쟁이 중산층에 직격탄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고, 높은 물가상승률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설명할 부분이 많긴 합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와 공급망 문제 등 말이죠. 하지만 정치라는 게 한번 상대방의 공격에 문제가 이슈화하고 커지면 블랙홀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더합니다.
지난 5월 ‘3분 월스트리트’에서 “물가상승은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며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지 않을 경우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때의 예측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되레 문제가 더 커진 상황입니다. 폭스뉴스의 여론조사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인플레이션이 정치판에서 얼마나 잘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어제 바이든 대통령은 7월 CPI 발표 뒤 “우리는 매월 인플레이션을 주의 깊게 관찰할 것이며 필요할 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적절한 행동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과 어제 오늘, 백악관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인플레이션은 좀더 둔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섰으니까요. 인플레 우려는 조금 더 덜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보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강도입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은 “연준의 대응이 이미 늦었다”고 하는 상황인데 정치적 부담에 대응속도가 더 빨라지게 되면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시장에 큰 충격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 겸 SS이코노믹스 대표는 “인플레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금리를 더 많이 올려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 내에서 인플레에 대한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정치+경제문제인 만큼 향후 전개방향을 예측할 때도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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