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전거지감







가의는 중국 전한 초기의 사상가다. 그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가 시황제 사후 바로 멸망한 것은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나라를 인의(仁義)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서 가의전에 보면 그는 ‘진정사소’라는 글에서 “진나라의 2대 황제인 호해가 포학무도하고 형벌이 가혹하고 백성들을 함부로 죽인다”고 썼다. 이어 “속담에 이르기를 앞 수레가 엎어지면 뒤 수레는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다(鄙諺曰 前車覆 後車誡). 진나라 멸망의 바퀴 자국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뒤 수레와 같은 우리도 넘어지고 말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나라가 진나라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전거지감(前車之鑑)이라는 사자성어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가의가 “속담에 이르기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앞 수레가 가는 길을 보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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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주와 신하들의 얘기 모음집인 설원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전국시대 위나라 왕 문후는 술을 한 번에 마시지 못하면 큰 대접으로 벌주를 마시기로 신하들과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문후가 벌주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약속을 무시했다. 이때 공승불인이라는 신하가 나와 “앞 수레가 넘어진 것은 뒤 수레의 경계가 된다(前車覆 後車戒)”며 “왕이라고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복거지계(覆車之戒·엎어진 수레가 주는 교훈), 전사불망(前事不忘·과거의 실패를 잊지 않는다) 등도 전거지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자오사오캉 대만 BCC 라디오방송국 사장이 최근 “민진당의 무딘 정책 탓에 국민은 아프가니스탄이 대만의 전거지감이 될 가능성을 모르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집권당인 민진당이 그동안 중국이 공격하면 미국이 구하러 올 것이라고 국민을 세뇌해왔는데 아프간에서 보듯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아프간 패망 사태에서 싸워서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정부군은 전투 한 번 해보지 않고 탈레반에 정권을 넘겨줬다. 아프간의 불행은 우리에게도 전거지감이 돼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지킬 의지를 확고히 하고 압도적 군사력을 갖출 때 비로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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