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업으로 번진 '인국공 사태'…직고용 논란에 '勞-勞 갈등' 확산

[정권말 목소리 높이는 강성노조 ]

■현대제철 비정규직노조 회사 점거

협력사 파견직 직고용 요구 쏟아지며 노동시장 대혼란

자회사 세워 채용도 거부…소송 앞둔 포스코 등 초긴장

기존 직원·취준생과 형평성 해쳐…勞-勞간 반목 심화

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3일 오후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내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00명은 생산 부서 사무실인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한 뒤 근무 중인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연합뉴스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3일 오후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내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00명은 생산 부서 사무실인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한 뒤 근무 중인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오후 5시 30분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근로자 100여 명이 느닷없이 당진제철소 사무동(5층)인 통제센터를 불법으로 기습 점거했다. 현대제철 협력사 직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근무 중인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올해 자신들을 원청(현대제철) 직원으로 직고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진입을 막는 과정에서 당진제철소 보안업체 직원 9명 등 11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민간기업으로 번진 인국공 사태

문재인 정부가 야기한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민간으로 대거 확산되고 있다. 민간 협력사 직원들이 원청의 자회사 정규직 직원 채용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원청의 직고용을 요구하며 연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공공 부문의 채용 ‘불공정’을 야기한 데 이어 민간 부문에서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불법 파견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3개의 자회사를 세워 협력사 직원 7,000여 명을 대거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시를 받아들인 것이다.

인천과 울산제철소 협력사 직원들은 이에 응하기로 하고 다음 달부터 자회사 직원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당진제철소 협력사 직원 5,300여 명 가운데 2,500여 명은 이를 거부하고 현대제철 본사 직원으로 채용해달라며 이날 농성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현대제철 측은 난감한 상황이다. 일부 협력사 직원만 본사 소속 직원으로 직고용하는 것은 특혜인 데다 인건비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들을 본사 직원으로 채용하면 청년 신규 채용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엄격한 채용 절차를 거친 본사 직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실제 현대제철 직원들 사이에서는 “본사 직원들은 치열한 채용 경쟁을 뚫고 입사했는데 협력사 직원들은 사측의 호의를 이용해 갑자기 본사 직원으로 채용해달라고 한다. 본사 직원이나 취업 준비생이 보기에는 이게 바로 불공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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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현대위아·포스코·한국GM ‘혼란’

현대제철뿐 아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도 사내 하청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현대위아에서 사내 하청 형태로 근무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A 씨 등 6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고용 의사 표시 등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현대위아는 최악의 경우 전국 사업장에 있는 2,000여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까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는 현재 현대위아의 정규직 생산직 근로자 1,000여 명의 2배 수준이다.

한국GM과 포스코도 사면초가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미 인천 부평, 경남 창원, 전북 군산공장 하청 노동자 82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원청인 한국GM의 고용 방식이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서 비정규직을 직고용하라는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GM은 약 1,700명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는 올 초 발표한 연례 사업 보고서에 한국GM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예상 비용으로 4,000억 원 이상을 적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희망퇴직까지 단행한 한국GM에 대규모 정규직 추가 고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포스코 역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1년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 하청 근로자 15명이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서는 사측이 승소했지만 2심은 근로자가 승소했다.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줄 경우 포스코의 다른 협력사 직원들도 소송을 제기하면서 직고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들이 모두 원청에 직고용되면 노동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엄격한 채용 절차를 거친 기존 직원과 취업 준비생들의 박탈감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한 ‘노노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국공 사태가 민간 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민간 영역에서 일괄적이거나 무조건적인 직고용은 오히려 청년 고용을 축소시키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불공정 논란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에게 박탈감을 야기하고 노노 갈등을 확산시킬 여지도 큰 만큼 직고용 전에 공정성을 갖출 수 있는 체계 마련 등 제도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무조건 대기업에서 모든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협력사나 자회사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문제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중소기업과 협력 업체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도록 지원해 근로자 처우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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