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1000일 만에 금리 올린 韓銀…금융불균형 겨냥했다

2018년 11월 30일 이후 1001일 만에 인상

완화적 금융 여건에 금융불균형 확대 우려

금리 인상에 사실상 '버블 파이터'로 나섰다 평가

이주열 "이제 첫 발 뗀 것"…연내 추가 인상 가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제공=한은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제공=한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6일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지난해 5월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초저금리 국면을 1년 3개월 만에 끝냈다. 한은이 금리를 올린 것 자체가 2018년 11월 30일 이후 1001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3년 가까이 한은은 금리를 내리거나 유지하는 결정만 해왔다.



한은은 지난해 코로나19라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 세계적 감염병 위기에 경제가 과도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기준금리를 최대한 내릴 수 있는 만큼 끌어내려 대응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0%대 초저금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엔 분명 도움이 됐지만, 이례적으로 완화적인 금융여건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집값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맞물리면서 가파르게 올랐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크게 떨어졌던 주가가 반등하고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등이 나타났다. 이에 가계신용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805조 9,000억 원으로 1년 만에 168조 6,000억 원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한은은 이를 두고 ‘레버리지(차입을 통한 자금조달)를 이용한 과도한 투자’라고 표현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한은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그러자 올해 초부터 한은 금통위 내에서 금융불균형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나왔다. 4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금융안정 이슈에 대한 통화정책적 차원의 고려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한 금통위원의 발언이 등장했다. 5월 금통위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이주열 총재가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고, 6월 물가안정목표 설명회에 나와 연내 금리 인상을 아예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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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금통위에선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8차례 연속 만장일치 금리 동결 흐름을 깨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온 것이다. 고승범 금통위원은 “실물경제 상황을 보면 금리 인상이 시급하지는 않다”라면서도 “금융안정을 고려하면 통화정책의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매파(통화 긴축 선호) 본색을 드러냈다. 금융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되면서 고 위원은 떠나게 됐지만 빈자리가 무색하게도 이번 금통위에서 남은 금통위원 6명 중 5명 찬성으로 금리 인상이 이뤄졌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 배경에 대해 “견실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점, 물가 상승 압력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정되는 점, 완화적 금융여건 아래 금융 불균형 위험이 계속 누적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이유를 들었지만 시장에서는 한은이 사실상 금융불균형 대응을 위해 ‘버블 파이터’로 나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꾸준히 주다가 코로나19가 경제 회복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지체하지 않고 올렸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은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은


다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금융불균형이 해소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이 총재는 “경제 주체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위험 선호 성향을 낮추게 돼 이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 주택가격 오름세를 둔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집값은 정부의 주택 정책, 수급 상황, 경제 주체들의 자산가격 기대 요인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통화정책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다른 정책도 효과적으로 같이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이 총재는 “금융불균형 누적을 완화시켜 나가야겠다는 필요성 때문에 이제 첫발을 뗀 것”이라고 했다. 또 “이번에 금리를 올렸지만 지금 금리 수준은 여러 가지 경우를 보더라도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말도 보탰다.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진정 효과 등을 살펴본 뒤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는 11월 25일에 올리거나 이르면 10월 12일이라도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에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도 늘어날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 폭 만큼 대출금리가 오를 것으로 가정했을 때 0.25%포인트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은 3조 원으로 추산된다.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에 노출된 변동금리 비중은 신규대출 기준으로 80%가 넘는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아직 매출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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