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밋빛 세수 전망과 함께 내년을 ‘재정 선순환 구조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세 수입 증가율을 7.8%로 잡아 내년 경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 4.2%를 훌쩍 뛰어넘는 만큼 지나치게 낙관적인 세수 추계에 재정 착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 국가 채무는 1,068조 원으로 약 100조 원 늘어 국민 1인당 국가 채무는 2,000만 원을 돌파하게 됐다.
31일 기획재정부의 ‘2022년 국세 수입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314조 3,000억 원) 대비 24조 4,000억 원 증가한 338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업 실적과 민간 소비, 투자, 수출 등 경제 전반이 회복세를 보이며 올해 2차 추경 대비 소득세가 105조 원으로 5.6%, 법인세가 73조 8,000억 원으로 12.6%, 부가세가 76조 원으로 9.7%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다만 최근 자산 시장 호황으로 급증세를 보였던 자산세수는 내년에 감소할 것으로 봤다. 정부는 내년 양도소득세가 22조 4,000억 원으로 11.9%, 증권거래세가 7조 5,000억 원으로 9.0% 각각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내년 6조 6,300억 원으로 29.6%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이 현행 공시지가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완화됐지만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에 따라 전체 세수는 증가한다고 본 것이다. 상속·증여세 역시 13조 1,300억 원으로 10.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재정 선순환 구조’가 시현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세수 추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세 수입 증가율 7.8%가 정부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 당시 제시한 경상 GDP 성장률 4.2%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위기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면 경기회복에 따른 세수 증대가 경향적으로 있어왔다”며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세수가 8%에서 12%, 그다음 연도에는 22%까지 늘어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이미 올해 세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돌고 있는데 2년 연속 이런 현상이 나타날지 의문”이라며 “세수는 약간 보수적으로 전망해서 총지출 증가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부는 적극적 재정을 위해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올해 세수 추계 오차율은 11%에 달했고 2017년에는 5.7%, 2018년에는 9.5%의 오차가 발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는 국세 감면액은 59조 5,000억 원으로 올해(55조 9,000억 원)보다 3조 6,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현재 전망치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세수 전망치가 크게 늘면서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다. 조세부담률은 국민소득에서 조세 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2015년까지 17% 수준이었던 조세부담률은 2019년 19.9%로 올랐고 내년에는 20.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됐다. 특별한 증세 조치 없이도 국민의 세 부담이 급증하는 셈이다. 조세 외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지출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올해 27.9%에서 2025년에는 29.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국가 채무는 100조 원 넘게 증가해 1,000조 원을 돌파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627조 4,000억 원이었던 국가 채무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965조 3,000억 원, 내년에 1,068조 3,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이를 내년 인구(5,184만 6,000명)로 나누면 1인당 국가 채무는 약 2,061만 원에 달하게 된다. 2015년 1,159만 원이었던 1인당 국가 채무는 2019년 1,399만 원으로, 지난해에는 1,636만 원으로 껑충 뛰었고 올해는 2,000만 원을 돌파하게 됐다.
내년 세수 증가로 재정 선순환을 천명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정 건전성 지표는 악화 일로였다. 통합재정수지는 2017년 24조 원으로 GDP 대비 1.3% 흑자에서 2019년부터 12조 원 적자(GDP 대비 -0.6%)로 돌아섰다.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올해 90조 3,000억 원(-4.4%)에서 내년 55조 6,000억 원(-2.6%)으로 개선된다고 해도 2019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126조 6,000억 원(GDP 대비 -6.2%)에서 94조 7,000억 원(-4.4%)으로 개선되지만 이 역시 2019년(-54조 4,000억 원, -2.8%)보다는 악화한 수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실질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거의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세 수입이 10% 가까이 뛴다는 것은 세제가 잘못됐다는 의미”라며 “재원을 국가가 가져가 재투자나 기간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국가 경제 선순환을 일으키는 대신 재난지원금 같은 곳에 쓰니 민간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