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여명] '빵이 된 아파트' 김현미 유산

권구찬 선임기자

공공주도 발표만 수도권 200만 육박

아파트 만들기가 제빵 기업 수준

정책 품질은 속도 아닌 수급 조절력

'샤워실의 바보' 될라 되돌아 볼 때





지난해 11월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이라고 말한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국회 발언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야당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바로 나왔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 ‘빵투아네트 같은 소리 한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빵 발언은 때마침 새 주택임대차보호법발(發) 전세 대란까지 겹쳐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렸다. 그가 국민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으로서 다급한 심정을 무심코 드러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건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입만 열면 주택 공급은 차고 넘친다고 허튼소리를 해댄 데다 걸핏하면 다주택자의 투기가 문제라느니, 전 정부의 정책 탓이라느니 하는 물타기식 입방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빵 발언은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파트 공급 부풀리기와 속도전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게 분양 물량이 아닌 택지 확보 차원이라 해도 속도전은 가히 신공 수준이다. 2018년 12월 3기 신도시 첫 발표 당시에는 수도권에 3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더니 1년도 채 못 돼 수도권 127만 가구(8·10 대책)라는 ‘갑툭튀’ 같은 숫자가 나왔다.

이뿐이 아니다. 그로부터 장관 바통을 이어받은 변창흠표 시즌2가 올해부터 시작됐다. 공공재개발·재건축 등을 통해 서울 30만 가구, 전국 8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공 주도 3080+’라는 대책이다. 127만 가구와는 별도라니 이쯤이면 아파트 만들기가 동네 빵집이 아니라 제빵 기업 수준이다. 중복을 빼더라도 수도권 물량이 190만 가구쯤 된다. 이는 분당 신도시 20개만 한 규모다.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공급 계획을 보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지만 한편으로는 허탈감마저 든다. 문재인 정부 첫 부동산 대책 때 지금 대책의 절반만 내놓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생망’이니, ‘집포자’니 하는 2030세대의 절망과 탄식을 의미하는 부동산 신조어는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허수는 있다. 물량 축소 또는 사업 취소 벽에 부닥친 태릉 골프장과 용산 철도정비창 등 ‘영끌’ 한 국공유지가 대표적이다. 공공 주도 재개발이든 공공 직접 시행 재건축이든 땅 주인들이 싫다는 곳이 많아 시즌2가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주택 200만 호’ 시대를 연 6공화국 정부를 뺨칠 정도니 지금의 대권 주자들이 구태여 수도권에 100만 가구, 전국에 250만 가구씩 짓겠다는 공약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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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다. 김현미 유산은 현재까지 떠돌아 지난주 일곱 번째 신도시가 발표됐다. 지금도 집 지을 땅을 ‘영끌’해야 하는 국토부 실무진의 노력이 안쓰럽기만 하다. 시즌1도 벅찬데 시즌2 목표량을 채우려면 얼추 절반을 더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그토록 죄악시하는 주택 투기 수요는 절대 공급량이 아니라 필요한 수요량을 충족시켜야 해소된다. 주택 200만 가구 공급 계획이 서울 대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1980년대 말에는 수도권 주택 보급률이 60%대로 절대량이 부족했기에 1기 신도시의 서울 수요 흡수가 가능했다.

아파트 빵 공장 돌리기는 멈춰야 한다. 숫자 채우느라 헛힘을 쏟기보다는 꼭 필요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선별하고, 담대한 계획이 없다면 후대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게 합리적이다. 모름지기 정책은 곪아 터지기 전에 문제의 소지를 없애야 의미가 있다. 공급 속도전이 아니라 수급 조절력에 주택 정책의 품질이 달려 있다. 가뜩이나 통화 긴축의 시계가 돌고 있는 시점이다. 30여 년 만에 소환한 대량 주택 공급이 뒤탈 나지 않을지 되돌아봐야 한다.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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