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1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3.9% 늘어난 중국의 올해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금액과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영어명 에버그란데)의 3,050억 달러 부채.’
글로벌 투자자들이 보는 중국 경제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수치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마무리된 데다 홍색 규제 리스크까지 겹쳐 헝다와 같은 부도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부쩍 높아진 만큼 글로벌 시장의 충격파도 커질 수 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중국을 장밋빛으로만 바라봤던 투자자로서는 ‘방 안의 코끼리(누구나 알지만 애써 무시하는 리스크)’를 점점 확실히 인식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헝다에 亞달러채 수익률 12% 급등
당장 헝다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23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헝다그룹 사태로 4,280억 달러에 달하는 아시아 채권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 달러 채권의 수익률은 12%(23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했다는 뜻이다. 올 초만 해도 수익률은 7%에 불과했다. FT는 “헝다그룹이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채무 재조정을 촉발함은 물론 중국 시장을 뒤흔들고 나아가 국제 금융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헝다가 3,0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빚을 질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암묵적 지지와 글로벌 투자자들의 맹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고 특히 헝다 같은 ‘대마’는 안전하다는 근거를 찾기 힘든 믿음 말이다.
헝다의 달러 채권은 195억 달러에 이른다. 블랙록 등 글로벌 펀드들은 지난 8월까지도 헝다그룹 채권을 매입해 보유량을 늘려왔다. 노엘 퀸 HSBC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2차·3차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라고 말했다.
곳곳 리스크…묻지마 ‘中투자’ 시대 끝나
중국 경제는 지난해 주요국 가운데 최고치인 2.3% 성장하고 올해도 8% 이상 성장하면서 해외로부터 투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의 지난해 FDI는 1,6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5% 늘어났다. 당시 전 세계 FDI가 40% 줄어든 것에 비하면 큰 성공이다. 중국 FDI는 올해 들어서도 33% 이상 증가했다.
다만 이런 대규모 투자가 중국 내 곳곳에 도사린 경제 불안 요인을 도외시한 투자라는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지난해부터 둔화를 겪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생생한 실례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쏟아진 유동성을 줄이는 과정에서 부동산 대출 문부터 닫았다. 그 결과 2018년 전체 디폴트의 5.8%에 불과했던 부동산 부문은 올 1분기 26.9%로 치솟았다. 황웨이핑 인더스트리얼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동산은 최근 긴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홍색 규제’도 경제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중국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텐센트 주가는 올 들어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10%에 이르렀던 고도성장세가 느려지고 과잉 유동성이 해소되면서 중국에서는 회사채 디폴트가 급증하는 실정이다. 지난 한 해 293억 달러로 역대 최고였던 디폴트 규모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250억 달러(블룸버그 기준)를 넘어섰다.
과도한 中 투자, 금융 시장 부메랑 우려
국제자본시장협회 집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 기업은 약 6조 5,500억 달러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7,520억 달러가 미 달러 등 외화로 판매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대해 “미국 등의 펀드매니저들은 자국의 낮은 금리를 상쇄하기 위해 고수익 중국 채권에 베팅을 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조지 소로스도 “중국 투자는 비극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했다.
외국인 투자가가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은 국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시장 혼란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 실제 그간 중국에서 디폴트는 일상적이지 않았고 회사채는 주거래 은행이 안고 갔다. 디폴트가 늘어난 것은 2018년 시진핑 정부(2기) 들어 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FT는 “특히 외화 채권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정부가 보증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 덕분에 2019년에도 달러 채권의 디폴트 금액은 29억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기대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오히려 외화 자금을 가려 받을 정도가 됐다. 최근 미국 블랙스톤의 소호차이나 인수를 반대해서 무산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와 관련된 기업의 자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헝다 사태는 이를 무너뜨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