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골프로 승부 볼랍니다”던 완도 소년…최경주, 또 하나의 역사를 쓰다

한국인 첫 PGA 시니어 투어 우승

퓨어 인슈어런스 대회 정상 올라

PGA 진출·8승 이어 새 영역 개척

美 무대 오른 이후 술·담배 끊고

비제이 싱과 '연습경쟁'까지 벌여

갑상선 종양 수술·허리 부상 딛고

10대 못잖은 훈련으로 끝없는 도전

최경주의 완도 화흥초(왼쪽부터), 완도 중학교, 서울 한서고 시절.최경주의 완도 화흥초(왼쪽부터), 완도 중학교, 서울 한서고 시절.




PGA 투어 한국인 첫 우승을 차지한 2002년 5월 컴팩 클래식. /아시아프로골프투어 홈페이지PGA 투어 한국인 첫 우승을 차지한 2002년 5월 컴팩 클래식. /아시아프로골프투어 홈페이지


2019년 프레지던츠컵 당시 최경주.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2019년 프레지던츠컵 당시 최경주.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한 도쿄 올림픽. /연합뉴스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한 도쿄 올림픽. /연합뉴스


최경주(51·SK텔레콤)가 또 한 번 한국 남자 골프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최경주는 27일(한국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의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에서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총상금 220만 달러)에서 우승했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기록하며 베른하르트 랑거와 알렉스 체이카(이상 독일·11언더파)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이로써 최경주는 ‘개척자’의 이력에 PGA 챔피언스 투어 한국인 최초 우승 항목을 추가했다. 지난 2000년 한국인 1호 PGA 투어 멤버가 된 그는 2002년 5월 컴팩 클래식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한국인 PGA 투어 첫 우승을 이뤄냈다. 2011년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까지 통산 8승을 거둬 여전히 아시아 선수 PGA 투어 최다승 1위에 올라 있다. 올해 마스터스 챔피언인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6승을 기록 중이다.

27일(한국 시간)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한국인 첫 우승 쾌거를 이룬 최경주가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27일(한국 시간)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한국인 첫 우승 쾌거를 이룬 최경주가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선수뿐 아니라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팀 부단장(2015·2019년),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2016·2021년) 등 후배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묵묵히 수행해온 최경주는 이제 챔피언스 투어까지 제패하면서 또 하나의 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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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출신인 최경주는 초등학교(화흥초) 시절 축구와 씨름에 자질이 있었다. 당시 생활기록부에는 ‘축구부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고 적혀 있다. 중학교 때는 역도부에 들어갔다. 당시 완도중 역도부는 유명했다. 소질을 보인 학생은 광주 지역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를 해갔다. 하지만 최경주는 바벨을 잡은 지 1년 반 만에 놓았다. 최경주가 실제로는 1968년생이고 호적으로는 1970년생인데 전국체전을 위한 도 대표 선발전에 나가 실제 나이를 밝히면서 실격 처리된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최경주가 “대표가 못 될 바에야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완도 수산고 1학년 때인 1987년이다. 당시 완도 유일의 ‘청해진 골프연습장’이 생기면서 학교에서 최경주를 포함해 3명으로 골프부를 꾸렸다. 역도를 해 힘이 좋았던 최경주는 골프채를 잡은 지 3일 만에 90m 정도 되는 연습장 망을 넘기더니 “저는 이제 골프로 승부를 볼랍니다”라고 했다. 학교 졸업 후 배를 타는 막연한 인생을 그리던 섬 소년에게 새로운 꿈이 생긴 것이다.

최경주는 명사십리 해안에서 벙커 샷 연습을 하고 겨울에는 벼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 위에 볼을 올려놓고 드라이버 샷을 날리기도 했다. 당시 잭 니클라우스의 책을 보며 골프를 익혔던 최경주는 ‘헤드를 열고 모래를 가격한다’고 적힌 벙커 샷 요령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말하고는 한다. 정확한 그립을 익히기 위해 잠을 잘 때도 풀지 않은 적이 있다.

고교 1학년 때 또 다른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수학여행 코스 답사 차 완도를 들러 제주로 가던 서울 한서고 설립자 김재천 씨의 눈에 띈 것이다. 완도에서 제주행 배 시간이 남아 잠시 골프연습장에 들른 김 씨에게 최경주가 이런저런 샷 시범도 보이고 조언도 해줬다. 첫눈에 최경주의 잠재력을 알아본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최경주에게 서울로 전학할 것을 제안했다. 이듬해인 1988년 4월 상경한 최경주는 특별한 코치도 없이 야구부 숙소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톰 왓슨, 이언 우즈넘 등의 스윙 비디오를 보며 독학했다.

최경주는 1993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한 후 1995년 팬텀 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1996년과 1997년 2년 연속 KPGA 투어 상금왕에 오른 그는 1999년에는 일본으로 진출해 기린 오픈과 우베 고산 오픈을 제패했다. 이어 그해 말 미국 PGA 투어로 눈길을 돌려 등용문인 퀄리파잉(Q) 스쿨을 통과했다. PGA 투어 진출 후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술과 담배를 끊은 그는 비제이 싱(피지)과 서로에게 “미쳤다”고 할 정도로 새벽부터 밤까지 ‘연습 벌레’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체중이 10㎏이나 줄고 2년 전에는 허리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최경주는 지금도 동계 훈련 때는 재단 꿈나무들과 똑같은 일정을 소화한다. 골프채를 처음 쥘 때부터 몸에 밴 성실함이 그를 ‘골프 전설’로 이끈 것이다.


김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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