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력난 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감이 커지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국내 반도체 생산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지 공장 운영은 물론 국내 팹 운영에 필요한 원료 가격 급등에 대응할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중국 내 전력난으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물류난까지 겹쳐 중소기업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中전력난에 국내 소재 공급망 마비 우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두 개의 낸드플래시 팹을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 우시에서 D램 팹을 운영하고 있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세계시장 D램 출하량의 10%가 이곳에서 제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중국 북동 지역에서 시작된 전력 부족 문제가 중국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지면서 이들 팹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 공장은 전력 문제가 심각한 동부 지역에 위치해 있어 업계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팹 운영 중단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 만에 하나 팹 가동이 중단될 경우 정상화까지 많게는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양 사의 중국 팹은 큰 문제 없이 가동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육성에 적극적이고 이들 팹에서 출하된 칩의 상당수가 현지 내수 시장에 팔린다는 점에서 현지 정부가 필사적으로 팹 전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중국과 호주 간 대외 갈등 해결이 요원한 데다 전력 문제는 심화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현지 팹 뿐만이 아니다. 국내 반도체 원재료 수급 상황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각종 화학 소재가 필요하다. 화학 소재의 원료를 중국에서 수입해 가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 정부의 전력 관리 정책으로 일부 원료 공급이 상당히 타이트해졌다. 황린이라는 원료가 대표적이다. 황린은 낸드플래시 공정 중 일부 층을 깎아내는 ‘고선택비 인산’을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중국은 세계 황린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력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제품 생산량을 8월 생산량의 10% 이하로 줄이는 파격적인 방침을 세웠다.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정책으로 황린 가격이 급등했다. 업계는 당장은 수급 문제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세웠지만 이대로라면 공급 부족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칩 부족 사태 연말까지 이어져…메모리도 타격 불가피
설상가상으로 연초에 발생한 시스템 반도체 부족 현상이 지금까지도 정보기술(IT) 제품 공급망을 마비시키며 메모리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달 말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9월~11월 실적 예상치로 매출 74억 5,000만~78억 5,000만 달러, 영업이익 25억 4,000만~28억 3,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의 8%나 밑도는 수치다.
마이크론은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위탁 생산) 부족이 IT 기기 생산 계획에 차질을 주고 메모리 출하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메모리 시장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D램 3위 업체 마이크론의 부정적 시장 전망이 1·2위 업체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매출에도 적용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또 △코로나19 사태 이후 폭증했던 ‘언택트’ 수요가 한풀 꺾인 점 △반도체 패키징, 디스플레이 패널, 적층세라믹콘데서(MLCC) 등 반도체 공급 사슬과 엮인 국내외 IT 부품 제조 설비 또한 각종 대외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등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소기업, 도미노 가동중단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에서는 도미노 가동 중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장쑤성에서 철강업을 하는 B철강은 지난달 16일부터 전기 사용량의 90%를 감축한다는 통보를 받아 사실상 모든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장쑤성에 소재한 화학 업체 S사도 9월 20일부터 전기 사용량이 제한돼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랴오닝성에서 전기 부품을 만드는 S전기는 지난달 27일 전기 사용량 제한 통보를 받아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D철강은 지난달 26일부터 전력 사용 제한 조치로 중국 국경절인 오는 7일까지 공장을 쉬기로 했다.
랴오닝성에서 기계 부품을 만드는 C사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C사 관계자에 따르면 9월 27일부터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사실상 공장 가동이 멈췄다. 랴오닝성 외곽 지역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K사 또한 전기 공급 중단으로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광저우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Y산업의 경우 지난달 말부터 전기 공급 제한 조치를 통보받아 촛불을 켜고 작업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어 사실상 직원들이 일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