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목표는 우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2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NDC 설정에 대한 산업계의 불만과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철강·석유·자동차 업계가 저마다 “우리는 피해가 아닌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고 성토하는 광경도 펼쳐졌다. 이들은 탄소 중립 기술이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만큼 정부가 연구개발(R&D)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 산업계가 급격한 NDC 설정을 우려하는 것은 한국 제조업의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비중이 타 국가들보다 높은 반면 친환경 전환 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기 때문이다. 유럽 등 앞서 친환경 정책을 펼친 국가들과 경쟁했을 때는 기술력에서, 중국·인도 등 탄소 중립 후발국들과 겨룰 때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타국에 비해 급격히 빠르다고 입을 모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의 배출 정점에서 오는 2030년까지의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률은 4.17%로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EU의 1.38%보다 3배 높고 미국보다 1.35배 높은 수준이다.
이는 유럽은 지난 1990년, 미국은 2007년에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을 찍고 탄소 중립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한국은 2018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럽과 미국은 2030년까지의 감축 속도가 그 이후 감축 속도보다 낮지만 한국은 2030년까지의 감축 속도가 더 높다. 한국이 뒤늦게 탄소 중립 브레이크를 밟고 급제동하고 있는 셈이다.
탄소 중립 기술 개발 역시 선진국에 비해 더딘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해 5월 발간한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한 친환경 산업의 기술 수준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저장 및 포집 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로 기준 삼을 경우 한국은 80% 수준에 불과하다. 수소·연료전지 기술은 일본의 75%, 풍력은 EU의 75% 수준이다.
산업계의 불만은 정부가 급격한 탄소 중립 감축 목표를 설정한 데 비해 정책적 지원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준상 대한석유협회 산업전략실장은 “(정부가 발표한) 이번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는 비용 검토가 없다”며 “높은 온실가스 감축 비용으로 사회경제 전반의 충격이 예상되나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의미 있는 정책 지원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산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국제 기준 이상의 과감한 세제 지원 △규제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 △수출을 고려한 에너지 수출 정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조 실장은 “석유 제품의 국내 수요 감소에 따른 에너지 안보 우려를 탄소 중립 속도가 낮은 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의 수출 확대로 상쇄하는 국가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자동차 업계는 국내 생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확대하고 부품 업체 미래차 전환을 위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친환경모빌리티실장은 “소비자에 대한 전기·수소차 운영 보조금 지원 기간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한편 세제 혜택 대규모 확대 등을 통해 소비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며 “5~7년가량의 생산 기반 구축 소요 기간을 고려해 국내 생산 특별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철강협회는 전기로 운용에 필요한 고철(철 스크랩)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는 한편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은 “탄소 배출권 유상 할당 수익을 탄소 중립 기술 개발에 100% 지원하는 방안, 가연성 폐기물, 바이오매스 등이 연료뿐 아니라 ‘원료’로 사용될 경우에도 추가 할당 또는 배출량 산정 제외 대상으로 선정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