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선대가 세운 ‘크고 강한 기업’을 넘어서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밝혔던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 1주기를 맞아 새로운 삼성그룹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앞으로 이 부회장은 반도체와 바이오, 차세대 통신 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준법 경영을 제1 원칙으로 하는 컨트롤타워를 세워 이해관계자는 물론 전 사회 구성원이 신뢰하는 ‘뉴삼성’ 경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선영에 잠들어 있는 고인을 찾았다. 타계 1주기를 맞아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직계 가족인 고인의 배우자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만 참석했다. 가족들만 단촐하게 모인 이날 추도식은 20여 분 만에 짧게 끝났고 이 부회장을 태운 차량은 곧바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성인력개발원을 향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아낸 흉상을 창조관 로비에 세우는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이 부회장의 최측근만 곁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점을 상기하며 “삼성은 고인의 삶 그 자체였으며, 현실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가능성을 키워 오늘의 삼성을 일구셨다”고 업적을 돌아봤다. 이어 “오늘 회장님의 치열했던 삶과 꿈을 향한 열정을 기리며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며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뉴삼성’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발언은 지난 8월 13일 가석방으로 서울구치소를 나온 후 처음 공식적으로 나온 대외 메시지다. 이는 지난해 고인의 발인식과 재판 등에서 언급됐던 ‘승어부(아버지를 능가한다)’를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날 발언의 무대를 선영이 아닌 인재 경영을 우선했던 고인이 1991년 세운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으로 잡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이 고인이 실천했던 경영 철학을 흡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그룹 교육장에서 ‘더 나은 미래’와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냈다”며 “고인의 인재 제일, 사업 보국 경영 철학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각오는 물론 그룹 구성원들과 손잡고 긍정적으로 발전할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나가자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재계는 ‘이웃과 사회’를 언급한 메시지에 대해 최근 삼성그룹이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8월 21일)과 청년 일자리 3만 개 창출(9월 14일) 발표와도 궤를 같이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앞서 삼성그룹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고용·기회를 창출하고 이해관계자 모두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3대 목표’ 아래 전 계열사가 참여하는 총 24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투자만 180조 원으로 확정된 이 계획은 이 부회장이 오늘 언급한 ‘이웃’이라 할 수 있는 협력 회사와 소외 계층, 취업 준비생을 위한 상생 방안까지 아울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재계 일각에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간다’는 이 부회장의 메시지가 2017년 3월 해체된 미래전략실을 대신할 준법 경영 기반의 컨트롤타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그룹 전 사업을 총괄하고 조정하던 미전실의 부재로 손발이 맞아야 할 계열사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발 빠른 인수합병(M&A)이 어렵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부분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삼성그룹은 이날 20여 개 계열사 인트라넷에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사내 게시판에는 1993년 일본 오사카·후쿠오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을 돌며 신경영 철학을 그룹 전반에 전달했던 고인의 영상도 올라왔다. 임직원들은 “이룩하신 모든 것들을 저희들이 더욱 더 크게 키워 가겠다” “몇 마디 말로 그리움과 감사함을 어찌 다 표현할까요, 평온하세요” 등의 댓글을 남겼다. 이날 18시 기준, 온라인 추모관 조회수는 1만7,000회, 댓글은 약 2,600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