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인 ‘7대 수출 제조업’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놓였다.
정부와 국회가 상법·공정거래법 등 경영 활동을 옥죄는 규제 법안을 쏟아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압박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 조짐 △기업 현실을 외면한 과속 탄소 중립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 대란 등 4대 복합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배터리·철강·디스플레이·조선·석유화학 등 이른바 7대 주력 업종이 풍전등화 상태가 된 것이다.
4일 복수의 대기업 경영전략 담당 임원들은 “이맘때면 내년도 매출, 투자 전략과 규모, 고용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국내외의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아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인 만큼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수출의 효자 상품인 메모리 반도체도 시황이 꺾이고 있다. 컴퓨터(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고정 거래 가격은 지난달 9.51%나 급락했다.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이 자국 정부의 육성 정책에 힘입어 파상 공세를 펴고 있다. 미국 정부는 공급망 강화를 이유로 우리 기업들에 반도체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기론이 현실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중 패권 전쟁과 보호주의 정책은 자동차 업계에도 심각한 위협이다. 미국 하원은 노동조합이 결성된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자동차에 한정해 4,500달러(약 536만 원)의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현대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 회사들은 과속 탄소 중립의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오는 2050년까지 71조 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는 2040년에나 가능해 정부 정책을 이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철강 관세 분쟁을 마무리했고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이동근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수출을 견인했던 전통 제조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미국 등 주요국이 테이퍼링을 단행하거나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퍼펙트 스톰이 휘몰아칠 수 있다”며 “정부는 산업 정책을 현실에 맞게 재검토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요소수 대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아주 작은 물질 하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준다”며 “우리 산업의 대외 의존도를 면밀히 조사하고 특정 지역에 대해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내재화 내지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