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D4 부채비율 3년뒤 130% 넘어...홍남기도 "여건상 올해는 불가능"

[정치권 나라곳간 나몰라라]與 재난지원금 강행 논란

31.5조는 2차 추경 재원으로 이미 지출...숫자부터 오류

韓 부채의 질 급격히 악화...4년뒤 채무비율 獨보다 높아져

1인당 20만~25만원 주려면 15조 필요한데 가용자금 5조 뿐

이재명(오른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국회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귓속말로 이야기 하고 있다./ 권욱기자이재명(오른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국회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귓속말로 이야기 하고 있다./ 권욱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나라 곳간에 40조 원이 넘는 돈이 꽉꽉 차고 있다”는 발언을 내놓자 8일 정부 내에서는 “이 후보가 나라 살림이 굴러가는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딴청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올해 본예산 대비 초과 세수가 40조 원을 넘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 자금을 꺼내 써 돈이 들어차기는커녕 줄줄 새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폭등하는 국가 부채비율까지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은 이미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초과 세수 일부를 채무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도 이 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다시 한번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홍 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은) 여건상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이 있을 수도 없을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①초과 세수 40조? 가용 자금 많아야 5조=우선 초과 세수 40조 원이라는 ‘숫자’부터 오류다.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국회 심의를 거쳐 지난해 말 올해 본예산의 국세 수입 전망치를 282조 7,000억 원으로 잡았다. 이는 2020년 본예산 때 국세 수입 전망치인 292조 원보다 9조 3,000억 원가량 낮은 금액이다. 가계에 비유하면 경기가 안 좋아 아버지의 벌이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한 해 가계부를 짠 것이다. 하지만 올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호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7월까지 국세 31조 5,000억 원이 예상보다 더 걷혔고 이후로도 10조 원 이상의 초과 세수가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후보가 말하는 40조 원의 근거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7월까지 더 걷힌 31조 5,000억 원은 총 34조 7,000억 원 규모로 짜인 올해 2차 추경의 재원으로 이미 모두 편성됐다. 돈이 곳간을 꽉꽉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스쳤다 나간’ 셈이다. 7월 이후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세입은 10조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이 가운데 △40%를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우선 떼어줘야 하고 △유류세 20% 인하분 재원 △소상공인 손실보상 배제 업종 피해 지원 비용까지 포함하면 이 후보의 말대로 전 국민 추가 지원금 지급을 위해 가져다 쓸 수 있는 돈은 많아야 5조 원 안팎이다. 1인당 20만~25만 원을 지급해도 최소 15조 원 이상이 예상되는 전 국민 추가 지원금의 재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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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2022년도 예산안 편성 등에 대한 업무보고를 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권욱 기자홍남기 경제부총리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2022년도 예산안 편성 등에 대한 업무보고를 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권욱 기자


②4년 뒤 국가 채무비율 독일도 앞질러=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 후보 측은 이른바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론(論)’으로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 채무비율은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아 빚을 더 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재정점검보고서를 보면 올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비율(D2)은 51.3%로 미국(133.3%)이나 독일(72.5%) 등과 비교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도 이런 점을 내세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부채비율이 낮은 곳은 인구 134만 명의 에스토니아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부채 증가의 방향과 속도까지 따져보면 유독 한국만 부채의 질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당장 미국이나 독일은 내년 예산안 규모를 올해 결산 추정액보다 각각 17.1%, 19.1%씩 축소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줄인다. 내년 예산을 줄이기는커녕 국회 본예산 심사에서 국민들도 반대하는 지원금을 끼워 넣으려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행보다. 특히 우리나라는 복지 예산처럼 한번 편성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의무지출 비율이 전체 예산의 절반 정도에 달해 수술도 어렵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우리나라 GDP 대비 부채비율은 4년 뒤인 오는 2025년 64.2%까지 치솟아 올해부터 재정 건전화에 나선 독일(63.4%)을 앞지르게 된다.

숨어 있는 국가 채무를 더하면 나라 살림 사정이 더 심각하다. 국내 재정학 분야 석학인 구정모 대만 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는 과거 “일반 정부 부채에 공기업과 군인·공무원연금 충당 채무를 더한 D4 부채는 2024년 GDP 대비 130%를 넘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채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균형 재정을 의무화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③다가오는 신용 등급 청구서=가장 큰 문제는 나랏빚 폭증이 개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 후보가 내세운 각종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적자 국채를 더 찍어내면 국채금리와 여기에 연동돼 움직이는 시장금리까지 모두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피치 같은 강성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은 당장 내년부터 우리나라 신용 등급을 끌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기재부 당국자들의 고민이다. 신용 등급이 떨어지면 일종의 프로그램 매도식으로 외인 투자 자금 중 상당액이 한국을 떠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환율이 올라(원화 가치 하락) 물가가 오르면서 증시가 얼어붙어 관련 세수도 줄어드는 연쇄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벌써부터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정부에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어 청와대 대신 이 후보 캠프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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