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 1초, 신고자에겐 절박한 순간'…사소한 신고도 허투루 받을 수 없죠" [이웃집 경찰관]

■나인철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장

서울 내 출동 건수 '최다'…"초동대응 컨트롤타워"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가능성 열어두고 처리해야"

직원들 기지로 가해자가 신고 취소한 사건 해결

'국가시설 폭탄 설치' 허위 신고 2시간만 잡기도

"가장 안전한 나라 만들 수 있도록 최선 다할 것"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에서 지난 10일 나인철 112상황실장(오른쪽에서 첫번째)을 비롯한 지령 요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에서 지난 10일 나인철 112상황실장(오른쪽에서 첫번째)을 비롯한 지령 요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첫 단추의 중요성은 경찰의 112 신고 대응을 논할 때도 유효하다. 초동 조치가 적시에 제대로 이뤄져야 다급한 신고가 심각한 범죄나 비극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이후 수사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초동 조치라고 하면 현장에 출동해 사건을 수습하는 현장 경찰의 모습을 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초동 조치의 전부는 아니다. 그 뒤에는 시민의 다급한 신고를 받아 상황을 신속히 파악한 후 이를 현장 경찰에 전파하고, 이후의 사건 처리까지 관여하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그 조력자를 우리는 '112치안종합상황실(이하 112상황실)'이라 부른다.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지난 10일 만난 나인철 송파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초동 조치의 컨트롤 타워"라고 112상황실의 역할을 정의했다. 이는 단순히 경찰서 112상황실이 신고를 접수한 후 인근 지역경찰과 경찰서 내 관련 부서 경찰에 사건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 실장은 "상황실은 제한된 상황 안에서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서 현장 유의사항이나 조치방향에 대한 내용을 현장에 있는 경찰에게 알린다"며 "예를 들어 신고가 들어온 이력이 있는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사건이면 '상황이 이러하니 적극적으로 체포가 필요하다'는 지령을 내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각 지자체 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받는 폐쇄회로(CC)TV를 보며 현장 경찰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 임의 동행·현장 종결 등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하면 바람직할지 조언하는 것도 112상황실의 역할이다.

나인철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장이 지난 10일 112상황실에서 경찰전자지도(폴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찰전자지도에는 신고 접수 지역 인근에 있는 순찰차의 위치와 정보가 나와 있다./이호재 기자나인철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장이 지난 10일 112상황실에서 경찰전자지도(폴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찰전자지도에는 신고 접수 지역 인근에 있는 순찰차의 위치와 정보가 나와 있다./이호재 기자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의 지난해 112 출동 건수는 총 12만 4,680건. 서울 내 31개 경찰서 중 가장 많다. 출동을 하지 않는 단순 민원이나 상담 전화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처리해야 하는 신고는 약 380건에 달한다. 4교대로 근무하는 16명의 지령요원들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양일 법도 하지만 이들은 매 순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상황실 한쪽 벽면에 크게 적힌 문구처럼 '단 1초가 신고자에겐 절박한 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실장은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실제로 출동을 해 보면 상황이 심각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차분하게 신고를 해서 갔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아버지가 칼을 들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직원들과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고를 처리하자'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112상황실 소속 박진우 경사가 지난해 9월 처리했던 사건도 마찬가지다. 박 경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주소지를 불러주는 여성의 신고 전화를 받고 즉각 총력 대응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10분 후에 "말다툼을 한 것인데 해결됐다"는 신고 취소 문자가 접수됐다. 박 경사의 머릿속에는 '다급해 보였는데 어떻게 10분 만에 해결이 됐나'라는 의심이 스쳤다. 다시 신고자에게 연락했지만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신고자가 알려준 주소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박 경사는 녹취록을 반복 재생하며 정확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들을 특정했고 통신 수사를 의뢰했다. 강력팀과 공조해 추적을 하고 보니 신고자는 한 노래방 직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감금된 상황이었다. 가해자의 휴대전화로 몰래 112에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가 이를 알고 신고를 취소했던 것이었다. 박 경사의 기지로 피해 여성은 추가 피해 없이 구출될 수 있었다.

나인철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장./이호재 기자나인철 서울 송파경찰서 112상황실장./이호재 기자


매번 전력을 다해 신고에 응하는 112상황실이지만 이따금 걸려오는 허위·장난 신고를 접할 때면 맥이 풀린다. 나 실장은 "이제 경찰이 반복되는 허위신고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철저히 대응하니까 많이 줄긴 했다"면서도 "올해 10월까지 우리 상황실에서 형사입건한 허위신고만 38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112상황실의 강찬영 경사는 새벽에 근무를 하다가 '국가 중요시설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신고를 두 차례 접수했다. 떠올려보니 신고자의 목소리는 강 경사가 지난밤 접수했던 한 업소의 업무방해 신고에 등장한 목소리와 흡사했다. 강 경사는 해당 신고에서 나온 인상 착의, 결제 내역 등 정보를 지역경찰에 전파해 수색을 실시했다. 신고자는 2시간 만에 발견됐고, 폭탄 설치 신고는 허위로 드러났다.

나 실장은 "이 사건만 해도 허위신고를 처리하는데 많은 공권력이 낭비됐다"며 "만약 같은 시간대에 다른 강력범죄 신고가 들어와서 그 사건 처리에 차질이 생겼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피해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실장은 "지금도 소방에는 경찰보다 많은 허위 신고가 접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허위 신고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고 국가 기관을 마비시키는 일인 만큼 국민 분들도 경각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시민에게 가장 먼저 응답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112상황실 경찰관들이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나 실장은 "112상황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생명이 달려 있는 긴급 사건을 매일같이 접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잠실대교에서 누가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무사히 구조해서 가족에게 안전히 인계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고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나 실장은 "프랑스 리옹에서 인터폴 협력관, 베트남에서 경찰 영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느꼈던 것이 한국의 치안 수준이 무척 우수하다는 점"이라며 "가장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직원들과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김태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