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로터리]무기체계, 이제 ‘가성비’로 평가한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사진 제공=방위사업청강은호 방위사업청장/사진 제공=방위사업청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면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거나 구동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중앙처리장치(CPU)·주기억장치(RAM) 등과 같이 하드웨어 용량이 부족한 게 주요 원인이다. 특히 e스포츠 수준의 게임은 컴퓨터 처리 속도가 느리면 작동 자체가 곤란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성능 컴퓨터를 구입하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돈이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필요한 하드웨어만 대용량으로 교체해 처리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참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무기 체계를 획득하는 방위사업청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주변국 군비 증강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첨단 무기는 적시에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방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첨단 무기 도입과는 별개로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이 강구돼야 한다. 그래서 무기 체계 획득도 ‘가성비’라는 기준이 필요한데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현재 운용 중인 장비의 일부 성능을 개선해 향상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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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체계는 통상 30년 이상 운용한다. 베트남전쟁에서 활약했던 M48 전차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배치 중이다. 당연히 이러한 장비들은 오랜 기간 노후화해 점점 기대했던 전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그 장비들을 폐기하고 새로운 장비로 대체한다면 많은 예산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컴퓨터 속도를 높이는 것처럼 무기 체계도 성능 개량을 통해 적은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한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40년 가까이 기동 중인 K200 장갑차는 당초 28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이후 350마력 엔진이 새롭게 개발돼 2009년 엔진 성능 개량을 통해 기동성을 25% 향상시켰다. 개발 당시 105㎜ 주포를 장착했던 K-1 전차는 이후 안보 상황 변화에 따라 120㎜ 주포로 교체해 화력을 높이기도 했다.

앞으로 방위사업청은 국민 혈세를 소중히 여기며 전투와 직결되는 성능 외에도 효율성·편의성·안전성 등 기본 운용성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과거 기계식으로 장착된 장갑차 계기판의 속도·회전계는 겨울철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조만간 전자식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상륙 돌격 장갑차는 야지에서 기동할 때 탑승 인원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 중이다. 장갑차·전차 등 대형 장비는 운용 과정에서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후방 카메라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강조했다. ‘옛것에 토대를 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날로 커져가는 한반도 안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충분한 억지력을 갖춘 첨단 무기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예산 범위에서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갖고 현존하는 무기 체계의 성능을 최대한 향상시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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