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종전 선언에 대해 중국이 한발 빼는 듯한 입장을 돌연 내놓았다. 한미 간 종전 선언 협의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는 시점에서 중국이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서방국가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이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이 우리 정부에 참여 압박용 카드로 종전 선언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22일 한 언론(YTN)에 출연해 종전 선언과 관련, “뭔가 하더라도 중국하고 상의해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싱 대사는 또 “중국은 정전협정 서명국”이라며 “우리로서는 (종전 선언에) 개방적”이라고 덧붙였다. 싱 대사는 또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종전 선언 가능성에 대해서는 “남북 간 어떻게 합의하는지에 따라서 하는 건데, 중국은 일단 평화스럽게 성사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큰 문제는 서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미국하고 북한 사이의 믿음이 그렇고, 남북 사이에도 우여곡절이 있다. 그런 관계를 개선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싱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간 종전 선언과 관련해 중국에서 내놓은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중국의 외교 수장인 왕이 부장은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만나 대북 문제 등을 협의했다. 한중은 당시 종전 선언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한 협력을 다졌다. 또 이달 초에는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류샤오밍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화상으로 만나 종전 선언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류 대표는 협의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속적 협력 의지를 표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싱 대사가 돌연 종전 선언에 대해 중국과의 협의를 주문하자 기존 논의를 후퇴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영국 등 주요 국가가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해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을 밝힌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용 목적이 담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 선언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한미 간 조율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고 중국은 이견이 없는 것처럼 보여왔다”며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베이징 올림픽 참여 압박 등 다양한 목적이 담겼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종전 선언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독주에 중국이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며 “서방국가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등 민감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한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다음달 10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 참석한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경제협력과 더불어 종전선언 등 대북문제에 대한 서방국가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