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 작가 "쓸데없는 짓이라던 웹툰, 제 인생 바꿨죠"

'아, 보람 따윈…' 삽화로 유명세

상사 갑질 꼬집어 '사이다' 별칭

"웹툰은 잘 쉬고 즐겁게 만드는 것

TV 해체한 백남준 거장된 것처럼

자신이 모른다고 가치 없지 않아"

양경수 작가가 서울 영등포동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웹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양경수 작가가 서울 영등포동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웹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릴 때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잘하라는 말들을 자주 들었는데 주변 친구들을 보니 쓸데없는 짓을 잘해 성공하더군요. 저도 그것으로 이름을 알렸고요. 쓸데없는 생각들이 사실은 가장 창조적이고 쓸 데 있는 행동들입니다.”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웹툰으로 큰 인기를 끈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37) 작가는 7일 서울 영등포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서울경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내가 모른다고 가치 없는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양 작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불화를 그렸지만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현대미술과 불교를 접목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는 물론 노르웨이, 네덜란드, 미국 뉴욕 등 해외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웹툰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년 일본 작가 히노 에이타로의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 그린 삽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 이후 단행본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과 ‘잡(Job)다(多)한 컷’, 웹툰 ‘괜찮아 어차피 안 괜찮으니까’, 드라마 ‘김과장’의 엔딩 삽화 등으로 직장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양경수 작가가 서울 영등포동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자신이 그린 이모티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양경수 작가가 서울 영등포동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자신이 그린 이모티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웹툰은 기존과는 사뭇 다르다. 스토리도 없고 주인공도 없다. 한 컷의 만화가 전부다. 대신 그 속에 직장인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발언을 담았다. 야근을 하는 부하에게 보람을 느끼라고 말하는 상사에게는 “어디서 X수작을!” “경영자 마인드로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라는 멘트를 날린다. “일찍 퇴근하네”라는 말에 속으로 “지금이 9시다”라고 외치고, 출근 때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건네는 동료에게 “아침부터 무슨 그런 거짓말을”이라고 말한다. 직장인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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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작가는 이런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어릴 때 웃긴 말을 하고 유행어를 따라 하면 아버지한테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고 혼났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하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라며 “백남준도 어렸을 때 TV를 굉장히 많이 해체했다는데 그것을 못 했다면 그의 비디오아트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 성공을 이끈 셈”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이 성공하면서 양 작가를 찾는 발길도 늘어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모티콘이 나왔고 ‘양치기 빵’에 음료수·복권까지 나왔다. 반지하 월셋방을 벗어나 어엿한 내 집도 마련했다. 그는 “공감이라는 게 이렇게 모든 것으로 퍼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며 “이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양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 건강이 나빠지고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세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직장 상사들이 부하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뀐 것이죠. 이젠 모두 힘들고 모두 을(乙)인 세상인 것 같습니다. 모두 다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더 이상 그런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고요.”

대신 요즘은 육아 관련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가 육아 관련 웹툰을 그리는 것은 주변 친구들의 대화 주제가 주로 아이들 관련 내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양경수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팔상도 중 하나인 '녹원전법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양경수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팔상도 중 하나인 '녹원전법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10대 제자를 쉽게 설명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느끼는 종교와 온라인에서 보는 종교는 많이 다를 것”이라며 “현재 개발자들과 함께 ‘메타부디즘(Meta-Buddhism)’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양 작가에게 웹툰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피식 하는 웃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는 시간을 잘 쉬고 더 즐겁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쉬어야 일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제 웹툰을 보고 ‘풋’ 하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게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그가 웹툰을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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