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美 소도시 휩쓴 연쇄 방화 뒤엔 독점자본·공동체 몰락 있었다

■아메리칸 파이어

모니카 헤시 지음, 돌베개 펴냄

2012년 빈집·건물 넘쳐난 어코맥

86건에 달하는 방화 사건 잇따라

지방소멸이 양극·공동화 부르고

경제조차 자본에 종속돼 생존 위협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5개월 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어코맥 카운티에서 86건에 달하는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주요 매체들이 연일 보도 경쟁을 펼치면서 무명의 지방 소도시인 어코맥은 이 무렵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으로 떠오르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해안 도시인 어코맥은 과거 농작물 산지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고장 중 하나였지만, 주민들이 대거 떠나면서 사건 당시에는 빈집과 건물들만 넘쳐나는 소멸 위기의 지역이었다. 방화는 주로 빈집과 건물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

이 연쇄 방화 사건의 심층 취재에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모니카 헤시가 뛰어들었다. 연쇄방화는 범인의 심상치 않은 면모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제적 징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책 '아메리칸 파이어'는 헤시가 수 개월에 걸친 취재를 통해 어코맥을 포함해 2012년부터 2013년 사이 미국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연쇄방화의 미스터리를 파헤친 범죄 실화물이다. 저자는 경찰 조사와 신문 과정 및 재판 기록, 인터뷰, 방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견해 등을 통해 연쇄 방화가 미국 사회의 변화, 범인들의 성장 배경과 지역공동체의 몰락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책은 어코맥 연쇄 방화범의 과거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방화범은 이 지역 주민인 찰리 스미스와 토냐 번딕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로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았다. 방화는 둘의 사랑이 발단이 됐다. 찰리는 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방화는 성적인 충동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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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건의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범인이 어떤 동기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그들이 연쇄 방화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임을 전하고 있다. 어코맥 연쇄 방화범들이 겪은 개인적인 어려움과 빈곤한 삶, 이들이 유년 시절에 겪은 가정폭력과 가난의 트라우마를 살펴 본 저자는 2012년 당시 세태를 반영하는 최적의 범죄가 방화였다고 지목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연쇄 방화는 201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범죄이자 현대 사회의 문제적 징후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특히 저자는 어코맥 카운티의 흥망성쇠 통해 지방 소도시의 소멸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미국의 지방 소도시는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광활하고 낭만적인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과 자본 집중화로 각 지방은 고유의 개성을 잃고, 이제는 주민들의 자립과 생존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날로 악화하는 주변 여건에 주민들은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로 떠날 수 밖에 없고, 농촌 및 소도시는 극심한 공동화 문제를 겪고 있다. 연쇄 방화 사건의 주무대인 어코맥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책은 지방 소멸이 국가 공동체 내부에서 곪고 있는 심각한 불균형 또는 양극화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비단 어코맥 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국가 전체의 문제이자 글로벌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강조한다. 작은 소도시의 방화 사건을 단초로 지방의 경제조차 글로벌 독점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저자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조차 밝히지 않은 어코맥 연쇄 방화의 원인에 대해 "나는 지난 2년 간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정답이 있을 만한 사안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단서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희망, 가난, 자존심, 월마트, 발기불능, 스테이쿰(소고기를 얇게 저민 냉동식품), 모의, 그리고 미국. 종종 우리를 낙담케 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미국"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1만7,500원.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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