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계 상황에 사직만이 살 길"…병상 이어 인력대란 닥칠판

■벼랑끝 몰린 K방역…'번아웃' 의료진 줄줄이 퇴사

외과·산부인과 의사 등 총동원

부담감에 지쳐 하나둘 떠나

전공의도 수련 대신 현장 사투

간호사들 "당장 충원을" 호소

잠시라도 숨쉴 특단 대책 절실

1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동시키고 있다./성형주기자 2021.12.141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동시키고 있다./성형주기자 2021.12.14




“의사 면허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내과 전문의가 아닌데 처음 마주하는 신종 감염병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지쳐 동료들이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있습니다.”

서울의료원의 한 외과 전문의는 14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처참한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2월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감염병 전담 병원 전환 작업에 돌입해 비상 체제로 운영된 지 2년 가까이 돼간다. 응급실과 중환자 병상이 대거 코로나19 병상으로 전환되면서 정형외과·산부인과 등 외과계 진료과 소속 전문의들도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투입되고 있다. 코로나19 격리 치료 병상에 입원하는 중증 환자들은 대부분 호흡기 증상 치료를 요하는 내과 환자들이다. 고령이나 기저 질환을 동반한 경우 갑작스레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의들조차 부담이 크다. 정작 본인이 돌봐야 할 환자들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은 채 돌려보내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보니 무력감만 커져가고 있다. 한 외과 전문의는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코로나19 환자에 밀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급차를 통해 떠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무력감이 깊어간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할 때마다 땜질식으로 내놓는 정부 정책에 더 이상 휘둘릴 자신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서울대병원 간호사 등이 간호인력부족 대책 마련,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서울대병원 간호사 등이 간호인력부족 대책 마련,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의사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이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없이 시작한 단계적 일상 회복 정책의 피해를 국민과 현장 간호사들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며 간호 인력 충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병상과 간호 인력 확충뿐 아니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으로 정하는 간호인력인권법을 제정해달라고도 요구했다. 장기전에 대비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인력의 공백은 고스란히 남은 의료 인력들의 업무 가중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코로나19 병상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의료 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엇박자가 벌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수도권 소재 감염병 전담 병원들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상시 채용을 하고 있지만 신규 채용되는 인력만큼 퇴사자가 발생하면서 의료 인력 수가 제자리걸음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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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코로나19 현장 상황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가운데)이 발언 중이다./연합뉴스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코로나19 현장 상황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가운데)이 발언 중이다./연합뉴스


피교육자 신분인 전공의들은 일찌감치 수련 환경을 박탈당한 지 오래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공개한 코로나19 전담 치료 병상 운영 관련 내과 전공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전공의들이 코로나19 병상에 투입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병원의 95%에서 야간에 코로나 병동을 담당하는 내과 전공의가 1명만 존재했고 이 중 74%는 다른 병동 환자들까지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환자실에 준해 운영되는 코로나19 병동에는 내과 전공의 중에서도 상급 연차가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급 상황 발생 시 환자 처치가 지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충분한 지원이나 대책 없이 코로나19 병상만 늘린 결과 젊은 의료진이 수련 환경을 박탈당하고 환자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전공의들을 값싼 코로나 대응 인력으로 내몰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의료 인력의 피로감은 한계로 치닫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세는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94명 늘어 누적 4,387명이 됐다. 위중증 환자는 906명으로 엿새 연속(840명→857명→852명→856명→894명→876명) 800명대를 지속하다 이날 처음 900명대를 넘었다. 위중증 환자 증가는 고스란히 의료 체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수도권 중증 병상 가동률이 86.2%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전·충북·경북에는 남은 병상이 없고 세종에는 하나만 남아 있다. 수도권의 1일 이상 병상 배정(병원 입원, 생활치료센터 입소) 대기자는 1,480명이다. 6일째 병상 대기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원할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5~11일 코로나19 사망자 중 병상 배정 전 사망자는 1명, 병상 배정 중 사망자는 16명으로 누적 45명이 됐다.


안경진 기자·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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