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국이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했다. 선수단은 보내지만 외교·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중국의 신장위구르족(族) 인권 탄압과 유린을 배경으로 꼽았다. 이는 이미 올 초부터 예견됐다. 1월과 3월 미국은 신장 사태를 ‘대량 학살(genocide)’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결정은 3월 발간한 ‘잠정 국가 안보 전략 지침’에서 밝힌 중국 인권 문제에 맞서 싸울 결의와 부합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의 동맹과 우방 역시 미국의 결정에 동참할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은 각각 8일과 13일에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미국의 동맹으로서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적 가치로 견지하는 우리나라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외교적 물꼬를 터주는 민간 외교 수단으로서의 스포츠 외교
국제 관계사에서 스포츠가 외교 수단으로 몇 가지 중대한 역할을 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71년 4월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것도 스포츠였다.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그해 7월에 중국을 극비리 방문한 것보다 선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측은 일본에서 진행 중이던 세계 탁구 대회 기간에 미국 탁구 국가대표와의 친선 경기를 베이징에서 갖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이를 미국 정부가 수락하면서 1950년 단교 이후 미국의 첫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이 미중 관계의 정상화 논의로 이어지면서 세계 언론은 이를 두고 ‘작은 공이 큰 공을 움직였다’는 헤드라인으로 당시 고무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스포츠는 외교에서 돌파구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다. 특히 외교 관계가 전혀 없는 나라 간에 접촉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두보와도 같은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민간 교류는 비자 발급에서부터 장애가 발생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세계 대회를 위해 예선과 본선 경기를 치를 때 참여국이 미수교국이라 할지라도 개최국은 이들에게 비자를 내줘야 하는 ‘의무’가 암묵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중국이 수교하기 이전인 1980년대에 스포츠 교류가 민간 외교의 어느 영역보다 훨씬 먼저 이뤄진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사상 첫 중국 방문은 1984년이었다. 3월 2~4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열리는 ‘데이비스컵’ 대회(프로 테니스의 국가 대항전)의 예선전 때문이었다. 그해 4월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사상 처음 방문했다. 제8회 세계 청소년 농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스포츠가 외교적 물꼬를 터주는 기능을 가진 이유는 대표단을 이끄는 수장이 정치적 인사로 구성된 데 있다.
따라서 대회 기간 내내 ‘정치적·외교적’ 소통은 끊임없이 이뤄진다. 대표적인 예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들 수 있다. 대회 기간에 한중 양국의 체육계 인사는 부여받은 정치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분주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대한 중국의 참가 결정이었다.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던 당시에는 민감한 문제였다. 반면 이 결정에 따라 2년 뒤 중국의 88 올림픽 참가가 결정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모두 참가하면서 한중 양국의 수교를 예상보다 앞당기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는 올림픽을 왜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가
주지하듯 스포츠는 잘만 활용하면 미수교국이나 적대적인 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건설적인 기여를 하는 훌륭한 외교 수단이 된다. 역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이념 홍보와 국익 수호를 위해 기회주의적 정치 도구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면을 보인 적도 적지 않았다. 이는 인류가 올림픽을 매개로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세계에 일방적으로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잘못 인식한 데서 비롯된다.
이런 이유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올림픽 유치를 꿈꾸는 동시에 참여국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 올림픽 유치는 두 가지 동기에서 착안된다. 대외적으로 국위 선양뿐 아니라 양호한 국가 이미지의 발산을 위해서다. 특히 독재 정권이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할 목적으로 올림픽 유치에 힘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내적으로 자국민에게 조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지위를 알림으로써 자긍심과 자부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한다. 이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개최국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치부가 세계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 전에 개고기 논란이 항상 반복됐다.
역으로 참여국은 개최국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참지 못한다. 특히 올림픽 정신, 즉 “스포츠를 통해…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에 위배되는 행위를 인내하지 못한다. 그 결과 미국과 65개국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를 거부했다. 선수단의 안전과 미국의 우월주의에 항의한 소련은 12개 동구권 나라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미중 전략적 경쟁에 올림픽 보이콧은 왜
미중 전략 경쟁이 과열되면서 불똥은 2022 베이징 올림픽으로 튀고 있다. 미국은 신장 인권 사태 ‘등’으로 외교적 보이콧의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이 밝히기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만 문제다. 현재 미국은 대만의 방어 강화를 위한 노력을 증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사절단과 대만 문제를 직접 거론할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중국도 이런 미국의 의도를 가늠할 법하다. 중국이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후 1984년까지 올림픽을 전면 불참한 이유가 대만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중화민국’을 중국으로 인정했다. 중국은 IOC의 입장을 당시 미국이 ‘두 개 중국’을 조장하는 데 동참하는 처사로 간주했다.
중국의 올림픽 불참이 27년간 이어지면서 IOC는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재개했다. 그리고 1979년 IOC의 일본 나고야 총회에서 해결을 봤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대표 정부로 승인하면서 중국의 오성기와 국가를 공식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1981년에는 대만을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bei)’로 명명하는 데 중국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대만 문제가 해결되면서 중국의 올림픽 참가가 28년 만에 성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반대를 이유로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유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내정간섭, 불법 침공과 세계 평화 위협 등이었다.
이처럼 중국도 과거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두고 벌어진 미중 양국의 외교전은 중국이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자세를 취하면서 비롯됐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이 알려지자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7일 미국의 결정에 대해 “앞으로 단호한 반격 제재를 취할 방침”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42년 전 중국이 숭고하게 여긴 올림픽 정신은 온데간데없어진 셈이다.
우리의 선택
과거 중국의 올림픽 보이콧은 중국이 ‘대만 몽니’를 부린 것이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은 중국과 대만 문제에서 일종의 ‘선 긋기’를 하기 위함이다. 대만 문제는 미중이 서로에게 몽니를 부리는 차원을 넘어 양국의 전략 경쟁을 지속시키는 원천으로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우리의 외교적 보이콧은 우리가 견지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와 다른 가치와 체제를 가진 나라다.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은 세계와의 체제 경쟁을 이미 선포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고려돼야 한다. 이 문제는 중국 내부의 인권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채택한 ‘국가보안법’ ‘국가정보법’ ‘국가사이버법’ 등 때문이다. 가령 중국 안팎에서의 반중 발언을 이유로 입국자를 처벌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중국 입국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런 위험의 심각성을 정부와 외교 당국은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2020년 이전에 중국에서 사라졌던 외국인과 외국 전문가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하는 동안 우리 선수는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 세리머니를 할 정도로 당찼다. 이의 재연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정부의 설마가 우리 국민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주재우 교수는…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이자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이다. 미국 웨슬리언대에서 정치학 학사,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미 조지아공대와 브루킹스연구소 방문학자를 역임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미중 관계, 북중 관계, 다자 안보 등이다. 저서로 ‘한국인을 위한 미중 관계사(2017)’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2018)’ ‘북미 관계(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