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프랑스에서 개최된 세계원자력전시회(WNE)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에너지 담당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원자력 산업의 귀환 △신규 트렌드를 주도할 소형모듈원자로(SMR) △탄소 중립 달성 시 다양한 원자력 산업군의 필요성 부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재훈(사장)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중립 선언으로 원전 산업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원자력 산업 생태계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우리나라는 2007년 개발이 완료된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인 ‘케이스타(KSTAR)’를 비롯해 SMR 등 뛰어난 원자력 기술을 갖고 있다”며 “현재 원자력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듐냉각고속로(SFR)’를 비롯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 중인 납·비스무스형 원자로가 대표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한수원은 이 가운데 경수로형 SMR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2018년 한수원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SMR 상용화 가능성 등을 검토하기 위한 2개의 태스크포스팀(TFT)을 설립했다. 올해 들어서는 500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한 연구 과제 ‘혁신형 SMR 개념 설계 및 기본 설계’를 추진하는 한편 ‘혁신형 SMR 국회포럼’을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다.
정 사장은 “오는 2023년 ‘혁신형 SMR 개발사업단’을 별도 법인화하고 2028년 SMR과 관련한 표준설계 인허가를 완료한 후 2030년께는 해외에 첫 SMR 건설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글로벌 에너지산업 메가트렌드가 탈탄소화·분산화·디지털화로 요약되는 만큼 SMR이 탄소 중립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이 같은 SMR을 기반으로 2020년 기준 3.8%인 해외 사업 비중을 2034년 14.2%로 늘리는 한편 신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13.2%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대로 탈원전 기조가 이어진다면 2030년 SMR 상용화 전에 국내 원전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관련 불투명성이 커지며 관련 사업자들의 폐업이나 핵심 인재 유출 사례 등도 늘고 있다. 정 사장은 “향후 SMR 프로젝트 추진 시 필요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협력 과제 배분 등을 통한 간접 지원 방식으로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며 “한국 원전 생태계의 중심인 두산중공업의 협력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를 취임 후 열한 차례 진행하는 등 국내 원전 사업자의 애로 사항 해결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해 국민 공감대를 전제로 긍정적인 얘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원전 관련 업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탈원전 등으로 원전 수출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한수원은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원전 추가 수주를 자신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주요 원전 업체들이 3세대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지만 준공 시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한국의 기술력이 주목받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건설하고 있는 개량형 가압 경수로인 AP1000을 비롯해 프랑스전력공사(EDF)가 프랑스 플라망빌에 짓고 있는 ‘유럽형가압원자로(EPR)’ 등은 계획 대비 준공이 대폭 지연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최대 원전 업체인 중국광핵집단공사(CGN)를 통해 건설한 ‘타이산’ 원전을 가동 중이지만 올 7월 발생한 연료봉 손상 등 안전 관련 문제점이 꾸준히 노출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 사장은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사업자들이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원전이 바로 한수원이 자체 개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APR1400”이라며 “이 때문에 한국의 원전 기술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높을 수밖에 없으며 SMR 개발에 대한 기대도 큰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원전이 단순히 각국의 에너지 확보 차원을 넘어 외교·안보 문제와도 직결되는 만큼 기술력 외의 변수가 다양하다는 점이 한수원에 부담이다. 실제 한수원 입장에서는 러시아나 중국의 입김이 강한 중앙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원전 사업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원전 업계에서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것이 결국 한국 원전의 해외 수출에 발목을 잡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수출 상대국의 에너지 담당 장관 등을 만나면 △공사 기간 준수 여부 △예산 등 가격 경쟁력 여부 △원전 외의 부가적 지원 같은 ‘패키지딜’ 여부 등을 물어볼 뿐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한빛 원전 건설을 위해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도입했지만 당시에도 ‘미국은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왜 한국에 원전 기술을 수출하느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은 1979년에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70여 개에 달했던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후에 원전 건설 계획을 재개한 바 있다.
정 사장은 내년 원전 이용률을 80%대로 끌어올려 한수원의 수익률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전 정부 당시 80% 수준이던 국내 원전 이용률은 각종 규제 강화로 2018년 65.9%까지 하락했다. 이 때문에 당시 한수원은 1,01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내년에는 계획 예방 정비 원전이 올해 대비 2개 호기가 감소하고 격납 건물 철판 및 공극 보수 등 주요 현안이 해소돼 올해보다 원전 이용률이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한빛 4호기 관련 쟁점 사항을 조속히 해결하면 원전 이용률 8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제성 높은 원전의 수명 연장을 통해 한수원의 수익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원전 계속운전은 경제성 외에도 사회적 수용성 등 다양한 측면을 봐야 한다”며 “이사회 차원이 아닌 법이나 행정명령 등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원전 폐기물 문제와 관련해서는 “2031년 고리·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공간이 서서히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사용 후 핵연료 시설 확보 계획을 포함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을 행정 예고한 상태여서 정부 정책 수립에 따라 원전 부지 내 저장 시설을 빠르게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전 해체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과 관련해서는 “2015년 기술 개발 초기에는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었으나 현재 약 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며 “원전해체연구소를 활용해 2030년까지 선진국 이상의 기술 수준으로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사장 He is...
△1960년 춘천 △1979년 용문고 △1983년 성균관대 사회학과 △1982년 행정 고시 26회 △1985년 서울대 행정학 석사 △2007년 산업부 대변인 △2012년 산업부 산업경제실장 △2013~2017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2018년 4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