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승자의 역사도 뒤집힐 수 있다

■조선이 본 고려

박종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우왕의 어린 시절 이름은 모니노이다. 신돈의 비첩 반야의 소생이다.”



고려의 역사서 ‘고려사’는 이처럼 우왕을 신돈의 아들로 적고 있다. ‘고려사’에서 왕의 역사는 ‘세가’에, 신하의 역사는 ‘열전’편에 수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우왕 편은 ‘열전’에 담겨 있다. 우왕은 혈통상 가짜 왕씨이니 왕의 반열에 둘 수 없다는 뜻이다. 우왕의 아들로 9살에 왕위에 오른 창왕도 마찬가지다. ‘고려사’는 “가짜인 신씨(우왕과 창왕)를 강등시켜 열전에 넣어 기록한 것은 함부로 왕위를 훔친 죄를 엄중하게 벌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적었다. 이 같은 ‘우왕·창왕 신씨설’은 가짜 신씨를 내려야 한다는 ‘폐가입진론(廢假立眞論)’으로 발전해 창왕 폐위의 명분이 됐고, 결국엔 조선 건국을 합리화하는 명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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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의 일방적인 주장을 오롯한 진실로 여길 수는 없다. 조선 중기 역사가 신흠은 “'고려사'의 논평은 모두 믿을 수가 없다. 고려 말 사실은 더욱 어긋나고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며 “우왕은 실로 의심할 것 없이 공민왕의 아들이다. 고려의 운수가 다해가자 왕의 기강이 해이해지고…조준과 정도전 무리가 부귀에 급급해 왕을 교체하기로 음모를 세웠다”고 했다. 이긍익도 ‘연려실기술’을 통해 이에 동의했고, 이덕형은 “우왕이 폐위된 것은 북벌(요동 정벌)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평했다.

역사는 엄연히 책과 기록물로 남았음에도 종종 뒤집힌다. ‘승자의 역사’가 진실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떄문이며, 시대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승자의 역사를 뒤집는 조선 역사가들의 고려 열전’이라는 부제의; 신간 ‘조선이 본 고려’는 다른 시대에 비해 사료가 적은 고려사 연구에 30년 이상 몰두한 저자가 왜곡된 고려 인물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고려 당대 사료를 포함해 ‘고려사’ ‘고려사절요’ 같은 조선 전기에 국가가 편찬한 사서, ‘성호사설’ ‘동사강목’ 등의 조선 후기 역사서와 현대 역사학자들의 평가를 아우르며 고려사에 입체적으로 접근했다.

광종 개혁을 바라보는 현대 역사학계의 긍정적 시선과 달리 당대의 최승로, 서필은 ‘무도한 왕’으로 묘사했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게는 개혁 군주가 견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800여 년이 지나고서야, 조선 후기 학자 이종휘에 의해 광종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책은 태조 왕건, 정도전, 최치원, 이색 등 고려의 대표적 인물 뿐 아니라 새로이 주목해야 할 김득배, 원천석 등 잊히거나 왜곡된 고려 인물들의 삶을 복원해 냈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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