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소설가 안정효 '성폭력 의혹' 폭로…"잠자는데 속옷차림으로 들어와"

재미교포 여성 "성적 묘사 이메일도 보내" 주장

이메일 전문 등 담은 '늦사랑 편지 1·2권' 출간

안씨 "스탠드 빌리려 한 것…미저리 같다" 반박

소설가 안정효씨. /연합뉴스소설가 안정효씨. /연합뉴스




장편소설 ‘하얀전쟁’으로 유명한 소설가 안정효(80)씨가 4년 전 재미교포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여성은 안씨로부터 받았다는 수백통의 이메일 전문과 자신의 주장을 담은 ‘늦사랑 편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2017년 그 날 무슨 일이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위스콘신대-리버폴즈에서 한국교류국장으로 재임했던 정영수(55)씨는 2017년 10월 대학 ‘한국의 해’ 행사 때 초청 인사로 방문한 안씨가 자신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행사 예산 문제로 자신의 집을 초청 인사들의 숙소로 활용했는데, 이 때 사건이 벌어졌다”며 “2017년 10월 2일 새벽 안씨가 (내가) 잠자고 있던 방에 속옷 차림으로 들어왔고, 인기척에 놀라 비명을 지르자 (안씨는) 방을 나갔다”고 전했다.

정씨는 “이후 안씨가 잠에서 깨 글을 쓰려는데 불을 어떻게 켜는지, 스탠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고 해명했다”면서 “불을 어떻게 켜는지는 집에 오셨을 때 이미 다 설명을 다 드렸다. (스탠드를 찾으려) 오신 분이 속옷 차림으로 노크도 없이 여성 혼자 자는 방에 들어온 것이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이냐”고 꼬집었다.

정씨는 ‘속옷 사건’ 전에도 안씨가 일방적인 구애를 담은 이메일을 여러번 보냈다고 했다. 특히 안씨로부터 받은 이메일 중에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담겨 성적 수치심, 모멸감이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오랜 시간 작가이자 번역가로서 존경해온 안씨를 ‘한국의 해’ 행사에 초청하기 위해 2016년 11월부터 섭외에 나섰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안씨를 만나 행사 참석 의사를 확인했고 초정 관련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메일은 안씨의 ‘사랑 고백’으로 바뀌었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정씨는 안씨가 2017년 5월 말부터 이메일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거절했지만 계속 사랑 고백을 했다고 전했다.



‘속옷 사건’ 직후 안씨는 외부 숙소로 옮긴 뒤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정씨는 2021년 2월 안씨에게 주고받은 이메일과 사건 경위 등을 담은 책을 출간하겠다고 알리며 교정용 원고를 보냈고, 안씨가 욕설과 협박이 담긴 이메일을 수차례 보내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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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정영수(55)씨는 소설가 안정효(80) 씨에게 수년 전 성폭력 피해를 봤다는 내용을 담은 책 '늦사랑 편지'를 출간했다. /연합뉴스재미교포 정영수(55)씨는 소설가 안정효(80) 씨에게 수년 전 성폭력 피해를 봤다는 내용을 담은 책 '늦사랑 편지'를 출간했다. /연합뉴스


책 ‘늦사랑 편지’에는 어떤 내용 담겼나


정씨가 쓴 ‘늦사랑 편지 1·2’ 두 권의 책에는 안씨와 주고받은 300여통의 이메일 전문과 이에 대한 정씨 의견 등이 담겼다. 정씨는 “고통스러웠던 일이 있고서 몇 년이 지났으나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책을 내게 됐다”며 “국제적 명성의 작가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폭력이라 생각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안정효의 마지막 이메일’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는 2016년 12월 초부터 10개월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메일 약 300통의 내용이 담겼다. 책에 있는 이메일 내용에는 안씨의 반복적인 구애와 함께 때로는 신체 특정 부위에 입을 맞추고 싶다거나 만지는 꿈을 꿨다는 성희롱성 글귀도 등장한다.

책에는 2021년 2월 정씨가 책 출간 계획을 알린 뒤 안씨가 보낸 이메일들도 실렸다. 또 정씨는 안씨가 위스콘신대-리버폴즈 총장에게 보내겠다며 첨부한 영문 편지 전문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안씨는 정씨를 마녀(witch), 창녀(whore) 등으로 지칭하며 ‘속옷 사건’에 대해 해명했다. 안씨는 이 편지를 통해 “방의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강연 원고를 읽을 수가 없길래 스탠드를 빌릴 수 있나 물어보러 그녀의 방으로 내려갔다”며 “나는 속옷만 입고 있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두 번이나 한 침대에 있었고, 그녀가 내 다리 사이를 더듬거리기도 해서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소리를 질렀고, 나를 강간범 취급을 했다”고 주장했다.

안정효 “정신 이상자영화 미저리처럼 느껴져”


안씨는 성폭력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안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속옷 사건'과 관련해 “밤중에 너무 컴컴해 (1층으로) 스탠드(이동식 전등)를 가지러 내려갔고, 이것을 가지고 올라가도 되느냐고 (정씨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며 “방문은 열려 있었고, 방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정씨)가 정신이 이상한 여자다. 5년이 지나고서 (책을 내는 게) 무엇을 노리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일고의 가치도 없다. 많은 경우 성 관련 범죄에서 볼 수 있는 똑같은 패턴”이라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덤터기를 씌우며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식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정씨를 비판했다.

안씨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책에) 하나도 집어넣지 않았다”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씨가 마치 영화 ‘미저리’ 속 배우 캐시 베이츠가 연기를 했던 여자(애니 윌킨스 역)처럼 느껴지더라”고도 주장했다.

안씨는 “나도 (당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쓰고 있다. 나중에 책을 보면 상황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일이 이렇게 진전될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한편 소설가 안씨는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는 1984년 대표작 '하얀전쟁'을 실천문학에 연재하며 등단했고, ‘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미국 뉴욕의 소호출판사에서 작품이 출간되며 현지 주요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안씨는 지난해 1월 ‘읽는 일기’를 출간했고, 지난달에는 에세이 ‘성공과 행복에 관하여’를 내는 등 현재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1982년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 1992년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조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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