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고 듣는 것보다 실리콘밸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패권 전쟁을 훨씬 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도 혼자서는 벅찬 싸움인데, 한국은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윈윈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수소 관련 핵심 기술 연구개발(R&D)을 하는 마이클 박 엠파워 대표는 지난 7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에서 본 글로벌 과학기술 전쟁의 현황과 대안’을 주제로 열린 ‘서경 CES 과학기술 포럼’에서 “미중 과학기술 패권 전쟁이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고 결론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모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소연료전지 스택의 주요 핵심 부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개발이 완료되면 PEM 방식의 수전해 설비와 수소차·수소연료발전 등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현재 주요 자동차사의 지원을 받아 차세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 중”이라며 “다소 글로벌하게 R&D나 기업 활동을 하면서 미중 패권 전쟁의 분위기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미중 패권 전쟁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학교나 회사 동료, 친구 등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등 사회문제로 번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당초 중국과 사업을 같이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나 핵심 기술 분야라는 점에서 자칫하면 미국 당국의 타깃이 될 수 있어 보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중국의 첨예한 과학기술 패권 전쟁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중국계가 퇴조했다기보다는 숨 고르기 양상이라고 본다”며 “미중 모두 승패가 결정될 때까지 양보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대학 연구실은 중국계와 인도계 석·박사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중국계는 미국에서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뒤 모국에 돌아가든가 미국에 남더라도 모국과 교류 협력을 활발히 해왔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중국 자본이 깊숙이 들어왔고 인재들도 많이 포진해 있어 그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활용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다. 그나마 미국의 견제로 중국이 주춤한 사이 한국에 기회를 살릴 틈새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에 인도계와 중국계가 많이 진출해 있고 한국의 진출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지난 20여 년간 기회를 놓친 것도 많다. 실리콘밸리 톱10 기업 등 미국 혁신 기업과 과감하게 투자와 협력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반도체, 5세대(5G), 전고체 배터리,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수소 기술 등에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은 이 중 상대적으로 중국의 경쟁력이 약한 수소 기술을 에너지 기반으로 해 정보기술(IT) 기기, 전기차, 수소차, 무인 항공기, 방위산업 등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과학기술계가 실리콘밸리에서 존재감이 미약한 실정”이라며 “한국 기업이나 투자사가 운영하는 투자 펀드라든지 민관 합동 벤처펀드를 조성해 투자를 늘리고 인재와 R&D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에 관해 주로 묻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문화와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이디어가 좋으면 투자도 잘 받을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등 대학에서도 기술이전과 창업이 활발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단기 성과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해서는 안 되고 과감하게 투자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대표는 과학기술 메카인 실리콘밸리 산학연 혁신 생태계의 힘은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는 문화적 다양성에 있다고 분석했다. 스탠퍼드대가 기후위기와 과학기술 패권 싸움을 대비해 올해 가을 학기부터 과학기술·인문학 단과대학을 만들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애플·구글·인텔·휴렛팩커드 등도 혁신과 인본주의를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그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본사를 텍사스로 옮기면서 실리콘밸리가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것을 베끼는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