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옷벗기기 게임 늑장대처?…배경에 인앱결제법 있다

'부당 삭제' 금지 조항에 규제 리스크

즉각 조치보다 개발사 방어권 우선해

선정성 등 면책사유 가이드라인 필요

싱가포르 게임 개발사 '팔콘 글로벌'이 출시한 '와이푸(Waifu)' 게임 이미지싱가포르 게임 개발사 '팔콘 글로벌'이 출시한 '와이푸(Waifu)' 게임 이미지




최근 옷벗기기 게임 ‘와이푸’ 사건으로 앱 마켓 사업자의 늑장 대처 논란이 불거졌다. 선정성 강한 게임이 15세 이용가로 유통되는 동안 하루라도 빨리 앱을 내리거나 등급을 청소년 이용불가로 재분류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지난해 말부터 시행된 이른바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국내 앱 관리에 있어 발빠른 대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은 앱 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방식(시스템)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글, 애플 앱 마켓에서 구축한 결제 시스템만이 아닌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개발사들이 만든 3자 결제시스템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그러면서 앱 마켓 사업자가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금지 행위로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 ‘콘텐츠를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른 결제 시스템을 쓴다는 이유 등으로 개발사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게임물 자체등급분류제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체등급분류제란 기존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맡던 등급 심의 업무를 민간 사업자와 분담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구글, 애플 등 10개 업체가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문제는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에서 정한 부당 행위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들이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앱 마켓에 오른 유해물에 대해 앱 마켓 사업자가 즉각 조치했다가는 개발사 또는 규제 당국에서 불법이라고 문제삼을 수 있다. 이에 앱 마켓 사업자는 유해물을 만든 개발사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등 개발사의 방어권 보장을 신경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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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로이터연합


실제 구글은 지난 2017년 한 성인 앱을 음란물이라고 판단해 삭제했다가 소송을 당한 바 있다. 톨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앱으로 키스방 등 업소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당시 앱 개발사는 구글이 부당하게 자신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등 공정거래법, 약관법을 위반했다며 10억여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결국 구글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유는 “구글과의 법적 다툼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구글이 앱 개발사들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을 전속관할로 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러한 계약 내용을 근거로 부당 행위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의 경우 직접 앱 마켓 사업자를 겨냥해 ‘부당 삭제’를 금지 행위로 규정하고 있어서 국내 규범력이 더 강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에 따르면 와이푸 사례는 앞서 구글이 게임물관리위원회와 사안을 인지하고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는 사이 논란은 확대됐고 개발사가 먼저 ‘게시 취소’ 처리를 하는 바람에 추가 조치를 취할 여지까지 사라졌다고 한다. 게시 취소란 개발사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취소 이후 앱이 내려가기 때문에 앱 마켓에서 더 이상 검색되지 않는다. 다만 게시 취소가 되면 게임물관리위나 구글에서 삭제, 등급 재분류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아무런 사후 관리가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자체등급분류제의 실효성까지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면책사유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해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법의 입법 취지가 개발사에게 결제 시스템의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지 앱 마켓 사업자의 두손 두발을 꽁꽁 묶자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와이푸 논란으로 자체등급분류제의 실효성 문제가 대두된 만큼 애먼 데까지 불똥 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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