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10조 원. 12일 기준 최근 한 달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국민에게 약속한 지원금이다. 윤 후보가 포퓰리즘의 파도에 올라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파도타기는 거침이 없다. 필요하다면 ‘병사 월급 200만 원’과 같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도 받는다. “존경한다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이 후보처럼 “포퓰리스트를 혐오한다”는 윤 후보가 세금 지원 공약을 쏟아낸다. 이기기 위해 상황에 따라 태세를 전환하는 ‘정치 쇼’에 동참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선 두 달 전에 열린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윤 후보는 미래 비전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윤 후보가 내놓은 약속은 50조 원의 코로나19 피해 업종 임대료 지원과 월 100만 원의 부모 급여 지급이다.
문재인 정부는 0세 20만 원의 양육수당을 올해 30만 원의 영아수당으로 올렸다. 하지만 윤 후보는 아예 3배를 더 주겠다고 했다. 출생아 수가 한 해 약 26만 명이니 약 3조 1,200억 원이다. 기존 30만 원 지원 예산에서 약 2조 원 이상 더해야 월 100만 원을 줄 수 있다.
윤 후보의 통 큰 약속은 이뿐 아니다. 10일에는 대한노인회를 찾아 “기초연금 급여 수준을 많이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곧 월 30만 원의 기초연금을 100만 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는 전언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올해 기초연금 예산(약 16조 원)의 3.33배(약 53조 원)를 줘야 한다. 연간 약 37조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윤 후보 측은 부인했지만 인상은 이미 약속했다. 10만 원만 인상해도 5조 원 이상이다.
지난달에는 코로나19 손실 보상(50조 원 이상), 코로나 재건기금(50조 원), 이달 9일에는 병사 월급 200만 원(30만 명 기준 7조 2,000억 원) 공약도 내놓았다. 수도권 광역교통망 공약도 17조 원을 들인다. 윤 후보는 기존 수급액을 빼고도 한 해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약 210조 원을 쓰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당장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 후보가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박근혜식의 ‘증세 없는 복지’를 앞세워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지원은 풀고·법질서는 세움)’ 시즌2 행보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제성장률이 급등해서 세수가 대폭 늘지 않는 이상 공약은 한 해 약 340조 원 수준인 세수로 이행해야 한다. 공약을 5년에 걸쳐서 해도 한 해 국방 예산(54조 원) 수준인 50조 원의 돈이 들어간다. 600조 원 예산 가운데 절반은 복지 등 줄일 수 없는 의무 지출이다. 나머지 300조 원 중 17%의 예산을 구조 조정해야 한다. 더욱이 약 150조 원을 약속한 코로나 공약은 단기에 집중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돈을 구하려면 증세와 국채 발행밖에 답은 없다. 하지만 윤 후보는 증세는커녕 양도소득세 유예, 증권거래세 폐지 등 감세 기조를 잡았다. 가계부채 2,000조 원, 국가부채 1,000조 원의 나라 살림을 물려받을 윤 후보가 약속을 지키려면 큰 빚부터 내야 할 공산이 크다.
윤 후보는 9월 “포퓰리즘은 일종의 사기”라고 규정했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면 대가가 따른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한 뒤 기초연금 10만 원을 더 주기로 한 약속(20만 원)에만 4년간 약 40조 원이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오자 공약을 수정했다. ‘공약사기극’이라는 야당의 비판 속에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취임 7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정은 발목이 잡혔다. 약속을 못 지킨 대통령의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은 수백조 원을 쓰며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국민과 180석 야당 앞에 사과할 것인가. 공약의 결말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