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경매에 나오게 된 비운의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두 점이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공개됐다. ‘문화독립 운동가’로 불리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한국전쟁 와중에도 품에 안고 지켰던 국보 제72호 ‘계미명 금동 삼존불입상’과 국보 제73호 ‘금동 삼존불감’이다. 귀한 국보가 어쩌다가 경매에 나오게 됐는지, 값을 매기기 힘든 국보가 누구 손에 들어갈 지, 오는 27일 열리는 경매를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국보까지 경매에…왜?
간송미술관이 소장해 온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 5월 케이옥션 경매에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285호 금동보살입상 등 불상 2점이 시작가 15억원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해당 불상들은 경매 종료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22억원에 매입해 국유 문화재가 됐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간송 유물’이 경매에 나왔다. 이번에는 국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측은 입장문을 통해 “2013년 재단 설립 이후 재정적인 압박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며 “전성우 전 이사장의 소천 후, 추가로 상당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상속세 부담을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국세청 관계자는 “전 이사장 타계 후 간송미술관의 미술품과 문화재로 인해 발생한 상속세는 극히 미미하다”고 일축했다. 상속세 납부 기한을 5~10년 연장할 수 있는 연부연납제도가 있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돼 내년부터 문화재·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납할 수도 있게 됐지만 간송 측은 이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신축수장고와 대구광역시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에도 간송 측 비용이 별도로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오는 3월 완공 예정인 간송미술관의 신축 수장고 사업에는 국비 45억3,000만 원과 서울시비 19억4,000만 원이 각각 투입됐고 간송 측 부담은 없다. 착공을 앞둔 대구간송미술관 역시 “대구시립의 공립미술관 사업으로 약 4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는 것이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국보 훈민정음을 NFT로 제작해 1억 원 짜리 한정판 100개를 판매하는 등 재정 확립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국보를 경매에 올리는 사태를 피하지는 못했다.
◇국보, 국립중앙박물관이 살까?
‘간송 국보’가 경매에 나오자 세간의 눈은 일제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쏠렸다. 역사적 가치가 큰 고가의 문화재를 구입할 곳이 많지 않은 데다, 지난번 ‘간송 보물 불상’도 박물관이 매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진우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경매에 나오는 여타 문화재와 똑같은 검토 대상 중 하나일 뿐 특별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케이옥션에 따르면 유물 추정가는 국보 72호 불상이 32억~45억 원, 국보 73호 불감은 28억~40억 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유물구입 예산 39억 원으로는 이 중 한 점밖에 구입할 수 없다. 박물관후원회를 통해 매입하는 방안도 있지만 후원회 관계자는 “국보가 경매에 나온 사상 초유의 사태라 아직 논의된 게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불교 문화재를 별도로 관리하는 조계종 측도 “이번 출품 ‘국보’는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아 (매입할) 명분이 없는데다, 고가라 접근 여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화재계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불교문화재 전문가인 A교수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지난번 ‘보물’ 불상을 박물관이 사들인 상황에서, 간송의 유지를 받들어 최소한 유물이 흩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경매 출품 전 박물관에 사전 의사타진을 하는 등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어야 한다”면서 “간송 유물을 무조건 국가 기관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문화재가 개인 소유일 경우 국외 반출이 안 될 뿐, 사고파는 거래는 가능하다. ‘간송 국보’ 두 점은 관리 단체가 간송미술관일 뿐 소유주는 간송의 유족, 즉 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