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파업이 4주차에 접어들었다.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택배노조의 몽니에 일부 지역의 배송 차질은 물론 배송 시간도 늦춰지며 피해는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이번 파업만큼은 끝까지 간다”고 입장을 밝힌 CJ대한통운 택배노조의 파업은 지난해부터만 벌써 네 번째다.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노조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합의했지만 반복되는 파업의 원인은 택배 노동자의 고용 구조에 있다. 택배노동자는 사실상 개인사업자의 성격을 가진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과거 특고는 사용자성과 근로자성을 동시에 가져 노조를 만들 수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특고 노동 3권 보장’ 공약에 따라 노조가 결성됐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법적 근로자 지위를 그대로 두고 정부가 노조부터 허용하면서 반복적인 파업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CJ대한통운 택배노조 파업으로 최근 하루 평균 20만 개 물량의 배송이 차질을 빚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물동량이 늘며 경기·영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배송 중단이 발생하고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CJ대한통운 택배노조는 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택배에도 접수 중단을 요청하는 등 도미노 파업을 유도하고 있다. 화주들이 이탈하자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CJ대한통운 비노조 택배기사들이 파업 반대 집회를 여는 등 ‘노노(勞勞) 갈등’까지 벌어지는 모양새다.
택배노조의 파업은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정책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특고에 대한 법적인 문제 등이 논란인 상황에서도 택배기사들이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조 설립 신고 필증부터 발급해주며 파업을 손쉬운 갈등 해결의 방법으로 제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택배노조가 2017년 최초의 특고 노조로 결성한 후 2019년에는 대리운전기사 노조가, 2020년에는 방과후강사 노조가 노조 설립 필증을 받았다.
문제는 특고의 고용 형태상 노조의 교섭권과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아 갈등이 생기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파업에서도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과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CJ대한통운에는 특고인 택배기사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없다. 택배 회사는 대리점과, 대리점은 택배기사와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대리운전기사의 경우에도 대리운전 콜을 받기 위해 두세 가지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데 어떤 프로그램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지, 복수로 체결했을 때는 어느 정도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지 불확실하다. 파업이 장기화하며 일각에서는 CJ대한통운이 나서야 된다고 하지만 교섭에 응할 경우 택배기사와 계약 관계를 인정하게 되고 보험 판매원, 배달기사 등 여타 특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택배노조 파업의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특고의 법적인 근로자 지위에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노조 필증을 발급해줬기 때문이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법제팀장은 “최근 학습지노조 파업 당시에는 기업과 교섭을 하려고 해도 특고의 성격 때문에 고정급을 약속할 수도 없고 뭘 교섭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특고의 사용자성과 근로자성을 어떻게 인정할지 사회적 공감대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필증을 내줬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택배노조와 사회적 합의까지 체결하며 이번 파업의 빌미를 내줬다.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문제 삼은 것 중 하나는 정부가 지난해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한 표준계약서다. 표준계약서에는 택배기사를 분류 작업에서 배제하고 택배기사의 작업 시간은 주 60시간 이내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노조는 대리점과 체결한 부속합의서에 명시된 ‘당일 배송’과 ‘토요 배송’ 원칙이 주 60시간 근무와 배치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표준계약서상 주 60시간 이내 작업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택배노조가 ‘억지 주장’이라도 표준계약서를 걸고 넘어지면서 양측 간 갈등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합법적인 대체 배송 방해와 쟁의권 없는 조합원의 파업 참여 등 CJ대한통운 택배노조의 불법행위에 눈감고 있다. 김종철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장은 “아무 법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 설립 필증을 교부해 현장에 혼란만 초래한 고용노동부는 왜 수수방관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궁금하다”며 “고용부는 불법적인 파업 현장을 지도, 개선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노조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는 정권 마지막 설 연휴에 ‘파업 대목’을 맞았다. 홈플러스 울산 지역 온라인 배송 노동자들은 18일 고용 보장과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농협 유통 4사 노동조합연대도 오는 26~27일 농협유통 산하 46개 하나로마트 매장의 문을 닫기로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선 CJ대한통운 택배노조를 비롯해 노조들이 파업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설 명절을 활용하고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시점도 노조들의 파업 결정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