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1주년 기념행사가 처절한 반성의 시간으로 치러졌다. 문을 걸어 잠근 채 진행된 행사에서 공수처 수장은 출범 1년 만에 쇄신을 다짐했다. 검찰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공수처는 인권침해 방지,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약속하며 그간 ‘작은 검찰’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공수처가 존재 의미를 되찾기 위해선 낡은 수사관행과 결별하는 ‘환골탈태’의 자세를 취해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1일 발표된 김 처장의 ‘취임 1주년 기념사’에는 ‘인권’이란 단어가 총 9번 등장한다. 검찰과 차별화된 인권 친화적인 수사기구를 자임했던 공수처는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1년 내내 ‘인권침해’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정치·언론·민간 등을 대상으로 한 ‘무더기 통신사찰’ 의혹이 현재까지도 공수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더기 통신조회·선구속 후수사 관행 답습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요청(통신조회)은 사실 어제오늘 지적된 사안이 아니다. 참여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10년이 넘도록 법원의 통제 없이 검경이 수시로 국민의 인적사항을 들여 볼 수 있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지난해 상반기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보면, 검찰(59만7,454건)과 경찰(187만7,582건)의 통신조회 빈도는 공수처(135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더 비난을 받고 있는 데는 인권 친화적 수사를 지향하면서도 기존 수사관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공수처의 행보가 모순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에선 통신조회 시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법안이 올라왔는데, ‘수사력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는 검경과 달리 공수처는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은 채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이다.
공수처가 검찰의 수사기법을 그대로 차용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는 손준성 검사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수처는 지난해 손 검사에 대해 체포 영장 1번, 구속 영장 2번을 청구했다. 현직 검사이고 주거지·근무지가 명확해 도주우려가 거의 없음에도 신병확보를 고수한 것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아닌 또 다른 인물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先)구속, 후(後)본격수사’는 현대 형사법에 적합하지 않는 비인권적 수사기법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음에도 공수처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병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홍익대 법과대학 교수)은 지난 20일 열린 '위기의 공수처 1년, 분석과 제언' 토론회에서 “‘선구속, 후본격수사’ 관행은 사람을 불러놓고 진술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수사관행”이라며 “공수처 역시 영장 발부를 전제로 수사의 동력을 얻으려는 수사기법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공수처는 피의자 측과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쓸 데 없는 데 힘 낭비하지 말라’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고, 허위 내용이 포함된 영장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공수처 향한 관심 형사절차 개선 계기 삼아야"
인권을 둘러싼 잡음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지만 공수처는 출범 1년 동안 인권감찰관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인권감찰관 공석으로 감찰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공수처가 여론의 질타에도 헛발질을 하는 것은 내부적인 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김 처장은 “내·외부의 통제시스템을 강구해여 수사의 적법성과 적정성을 적절하게 담보할 필요가 있다”며 변화를 예고했다.
일각에선 공수처에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이를 통해 기존 검경의 수사방식에 대한 개선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공수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형사절차가 선진화되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영중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가 수사하는 방식이 계속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요구를 공수처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는 것보다는 오히려 형사절차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일치시키는 것, 이첩 관련 상세규정을 두는 것 등이 필요하다”며 “수사관할 사건이 병합된 경우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해서도 법률에서 명시하면 기관간 다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고, 수사기관간 협의체 구성과 사건 분배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