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동물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십시오.”(한국동물보호연합 관계자)
한 방송사 드라마에 등장했던 말이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데 이어 충북 청주에서는 고양이를 커터 칼로 찌른 뒤 유기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동물 학대 사건이 연초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동물 복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의 상습적이고 관행적인 낙마 장면 촬영에 대해 동물보호법 위반, 동물 학대 치사 혐의로 추가 고발장을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촬영으로 출연했던 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21일 1차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이날 추가 기자회견을 통해 촬영장에서의 동물 학대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21일에는 고양이 관련 인터넷 카페에 ‘청주에 사는 30대 남성 A 씨가 고양이를 입양한 뒤 커터 칼로 여러 차례 찔러 학대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경찰은 관련 고발장을 접수하고 즉각 수사에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A 씨가 처벌 받더라도 단순 벌금으로 끝날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동물 학대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있지만 실제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살아 있는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면 학대로 규정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관련 법령이 강화됐다. 그러나 2020년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0~2019년)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3,360명 중 구속된 인원은 4명에 불과하다. 법은 강화됐지만 동물 학대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동물보호법에 대한 경찰 수사 매뉴얼 부족 탓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동물 보호 관련 공약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동물 보호 단체들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반려동물 표준수가제 도입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반려묘 등록 의무화를 공약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유럽에는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동물당이 있다”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시민 인식이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