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를 통해 최대 1조 2,000억 원을 조달하려던 현대엔지니어링의 계획이 결국 무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붕괴 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건설주가 타격을 입은데다 최근 증시의 조정까지 겹악재가 몰아치면서 기관 투자가들이 대거 수요예측을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상장을 통해 3,000억원 이상의 종자돈을 확보, 그룹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최종 수요예측 경쟁률이 50대 1 아래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6일 마감때까지만 해도 60~70대 1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실제 수요 기관 위주로 경쟁률을 집계하면서 30~40대 1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에 따라 공모가는 희망 범위 하단인 5만 7,900원도 위태롭게 됐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경쟁률이 생각보다도 낮기 때문에 하단에서 공모가를 결정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주 매출 및 공모 규모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룹 차원에서 상장 일정을 전격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상장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정의선 회장의 구주 매출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번 IPO를 통해 공모가 하단 기준 각각 3,093억 원과 823억 원을 시장에 내다 팔 계획으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공모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여러모로 급격히 악화돼 현대차그룹이 공모 규모나 향후 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상장 철회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수요예측 부진은 증시 급락과 HDC현대산업개발 사태가 겹악재로 작용한 측면이 컸다. 미국발 금리 인상 우려로 코스피지수가 지난 26일 2,709포인트까지 꺾였고 현대산업개발의 광주광역시 화정 아파트 붕괴 사고로 건설주에 대한 투심마저 차갑게 식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모가 하단을 기준으로 해도 현대엔지니어링 시가총액이 4조 6,293억 원에 달해 모회사인 현대건설(4조 4,600억 원)이나 경쟁사인 삼성엔지니어링(4조 2,000억 원)보다 몸 값이 비싼 것도 기관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향후 성장성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 산업에 비해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큰 수소 사업 등에 진출하면서 △폐플라스틱 자원화 △암모니아 수소화 △초소형 원자로 △전력 생산 △이산화탄소(CO2) 자원화 △폐기물 소각 및 매립 등 6대 신사업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회사의 계획은 관심을 모았다.
아울러 큰손 투자자들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상장 이후 계속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기 때문에 회사의 비전이 빠르게 실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회장은 상장 후에도 356만 1,308주(지분율 4.5%)를 보유하고 정 명예회장 역시 213만 1,404주(2.7%)의 주식을 계속 갖게 된다. 오너 일가가 대규모 주식을 보유하면서 상장 이후 주가 흐름에도 기대감이 형성됐다.
한편 현대엔지니어링은 설 연휴 직후인 다음 달 3~4일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을 계획하고 있다. 배정 물량은 400만 주 이상으로 청약은 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인수단인 현대차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삼성증권에서 진행된다. 상장 예정일은 2월 1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