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0년 이상 유지해 온 기업결합심사제도를 개편한다.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등 글로벌 기업결합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해외 경쟁 당국과의 제도 차이에 따라 심사가 길어지고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근 다수의 글로벌 인수합병(M&A) 건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외국과 우리의 심사법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애로 사항을 개선하고 기업결합심사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올해 상반기 중 연구용역을 실시해 법 개정안을 검토·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공정위는 M&A로 인한 독과점 가능성을 판단한 뒤 시정 조치도 직접 마련한다. 반면 유럽 등에서는 경쟁 당국이 독과점 가능성만을 평가하고 기업이 시정 방안을 마련해 오도록 한다.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시정 조치에 대한 기업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업이 적절한 시정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 경쟁 당국이 취할 조치가 없다. 유럽 경쟁 당국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사가 시정 조치를 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조치할 권한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결합심사제도 개편을 촉발시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심사도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날 심사 결과 공정위는 양 항공사의 중복 노선 중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독과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미주·유럽의 중복 노선에서 가격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미주 노선 중 중복되는 5개 노선에서 양사 합산 점유율이 약 78~100%에 달하는 반면 경쟁사가 없거나 1개사에 불과해서다. 서울에서 뉴욕·로스앤젤레스·시애틀·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를 오가는 노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럽 노선 중 중복되는 6개 노선도 양사의 합산 점유율이 69~100%로 높았다. 중국 노선에서는 중복되는 18개 노선 중 서울~장자제, 부산~칭다오 등 5개 노선에서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국내선 노선에서도 제주~김포·부산, 김포~부산 등 14개 노선에서는 가격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26개 국제 노선 및 8개 국내 노선에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할 때 양사는 보유한 국내 공항 슬롯(이착륙 시간)을 반납해야 한다. 공정위와 해외 경쟁 당국의 조치가 충돌할 경우 공정위는 시정 조치 내용을 수정·보완해 다시 전원회의 의결을 거치기로 했다. 다만 경쟁 제한성 판단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10년 내 슬롯·운수권의 수요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해당 슬롯·운수권은 통합 항공사에 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