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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중독과 탐욕'의 산업…돈 · 사람 모인 곳엔 항상 도박이 있었다

■도박의 역사-데이비드 G. 슈워츠 지음, 글항아리 펴냄

메소포타미아 유적서 도박 흔적

중국선 '카드놀이' 원조 격 성행

고대~현재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와

카지노 합법화된 라스베이거스

사막서 '밤이 없는 도시' 탈바꿈

팬데믹 시대에도 역대 최대 수익

양면성 지닌 '인간 욕망의 산물'로

카지노와 리조트가 밀집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일대의 모습. 화려한 분수 쇼와 조명, 네온사인 등은 라스베이거스를 불야성으로 만들었다. AP연합뉴스카지노와 리조트가 밀집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일대의 모습. 화려한 분수 쇼와 조명, 네온사인 등은 라스베이거스를 불야성으로 만들었다. AP연합뉴스




미국 라스베이거스. 20세기 초반까지도 네바다주의 허허벌판 사막에 자리잡은 소도시에 불과했던 이 곳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원동력이 된 것은 산업의 위치까지 올라선 ‘도박’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이 여전했던 지난해에도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네바다주는 역대 최고치인 연간 134억 달러의 도박 관련 수익을 거둬들였다. 특히 카지노가 모여 있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지역의 지난해 수익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도 7.4% 늘었다. 역대 최악의 역병도 도박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를 억누르지는 못한 셈이다.



데이비드 G. 슈워츠 미국 네바다대 교수의 책 ‘도박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도박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7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양의 발목뼈를 주사위처럼 써서 도박을 했던 흔적이 유물로 발견됐고, 고대 중국에서는 오늘날 카드놀이의 원조 격인 도박이 처음 행해졌다. 책은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바카라 게임장과 라스베이거스의 메가 카지노를 비롯해 영국·프랑스·이탈리아 귀족 세계, 미국 원주민, 중국 등 비서구권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도박을 모두 아우른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네바다주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도 134억 달러의 도박 관련 수익을 거뒀다. AP연합뉴스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네바다주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도 134억 달러의 도박 관련 수익을 거뒀다. AP연합뉴스


책은 돈이 모이는 곳에 도박이 있었고, 반대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박을 이용했음을 폭넓은 역사적 사례를 동원해서 전한다. 저자는 “상업적 도박의 발명과 현대적 은행의 발달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며 은행이 발행하는 현대적 화폐는 유럽에서 상업적 도박이 확산하던 시점인 18세기까지도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투자자들이 합명회사와 투기사업을 실험할 즈음, 도박자들도 도박을 사업 거래의 일환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대중이 도박장 운영 주체를 상대로 자유로이 베팅하는 현대적 카지노의 원형은 르네상스가 융성했던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발견된다. 일상에 지친 귀족, 부르주아들이 요양과 치유를 위해 찾은 휴양지의 스파에서 도박장이 성황을 이뤘으며, 유럽의 도박 붐은 오늘날도 휴양지와 결합한 도박장이 성업 중인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19세기에 정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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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에 카지노가 생기기 시작한 1955년 플러밍고 호텔 카지노의 모습. AP연합뉴스라스베이거스에 카지노가 생기기 시작한 1955년 플러밍고 호텔 카지노의 모습. AP연합뉴스


20세기 들어서는 카지노 산업의 경제적 매력에 눈 뜬 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미국 네바다주는 대공황에 따른 경제적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명분 아래 미국 50개 주 가운데 최초로 도박을 합법화했다. 이후 1947년 벤자민 ‘벅시’ 시걸의 플러밍고 호텔 카지노 등을 시작으로 호텔·공연장·카지노 등을 결합한 쇼 비즈니스 모델이 잇따라 등장했다.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치열한 경쟁 속에 이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거대해졌으며,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은 약간의 도박만 감수한다면 휴양객들이 최고의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중산층 공략이 본격화해 카지노가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합법적 사행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성공을 다른 지역이 가만히 지켜볼 리 없었다. 먼저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가 네바다주의 뒤를 따랐다. 훗날 미국 대통령까지 오르는 도널드 트럼프도 40대의 젊은 개발업자로서 이 지역에 ‘트럼프 플라자’를 설립했지만,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은 쇠락했다. 미 동부 코네티컷주에서는 절멸 직전의 인디언 피쿼트족이 카지노 운영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주에 연간 20억 달러의 세금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아이오와·루이지애나·미시시피주 등지에선 선상 카지노가 등장했다. 책은 싱가포르, 일본, 마카오 등 아시아 국가들의 도박 산업 현황도 전한다. 일본은 도박이 합법화되지 않았음에도 파친코가 성행해 소비 금액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의 도박 시장이 됐다.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한 카지노에서 딜러와 여행객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한 카지노에서 딜러와 여행객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저자는 “인류가 위험을 무릅쓰고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한, 도박에 매료된 사람들은 어디서든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도박은 언제, 어디서든 인간을 매혹해 왔다. 도박 중독으로 패가망신한 이야기가 꾸준히 들리는데도 국내 유일의 합법적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인근 전당포에는 ‘한탕’의 욕망을 위해 내던져진 값진 물건들이 쌓여 간다. 책을 덮는 순간, 도박 중독으로 망가진 사람들의 돈과 능력을 빨아먹고 자라는 카지노 산업의 씁쓸하고도 비정한 양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3만 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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