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에도 러시아의 진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방에 남은 카드로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럽 자산을 전격 동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SWIFT 퇴출은 러시아와 무역이 활발한 일부 유럽 국가가 꺼리고 푸틴 직접 제재는 러시아를 자극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 서방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24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SWIFT에서 퇴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SWIFT는 전 세계 은행 및 금융기관 1만 1000여 곳이 결제 주문을 주고받기 위해 사용하는 이른바 ‘달러 전산망’이다. 달러를 이용한 대부분의 무역 대금 거래가 SWIFT를 통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될 경우 러시아와의 원유·가스 거래가 활발한 독일·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는 무역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SWIFT 퇴출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밝힌 이유다.
SWIFT 퇴출은 미국에도 부담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를 SWIFT에서 퇴출하면)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 사용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SWIFT의 대안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위안화 전산망’을 택하면 위안화 사용 비중이 커지고 이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등 국가원수에게 입국 금지, 미국 내 자금 동결 등의 제재를 가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경우 재정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제재의 효과는 크지 않으나 러시아를 압박할 상징적 조치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해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 실제 지난달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 지도자를 제재하는 것은 미러 관계의 파탄을 의미하는 과한 조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미 우크라이나 파병에 선을 그은 미국과 유럽의 운신 폭이 좁아지는 가운데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우는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러시아는 친서방 노선을 따르던 조지아를 침공해 나흘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러시아는 조지아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을 승인하며 조지아 영토에 새 친러 자치공화국을 수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