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60년된 장수 막걸리, 전통주가 아니다?

정부 지정 장인 ·식품 명인이 제조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야 전통주

일반 막걸리 법률상 '전통주' 아냐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못해

저변 확대 위해 기준 재정비 시급





# 막걸리 업계 1위인 '장수 생막걸리'는 구한말 이전부터 운영하던 서울의 양조장들이 뭉쳐 설립한 60년 전통의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만든다. 그런데 이 막걸리는 전통주 판매가 허용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가 금지돼 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고자 고려 말에 사용하던 제조방식을 복원해 빚은 국순당 '백세주'도 마찬가지다. 전통기법을 계승한 우리 술이지만 온라인에서 살 수 없다. 둘 다 법률상으로 전통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지 5년이 됐지만 모호한 법적 전통주 기준 때문에 우리 술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만 제조하거나 주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만든 술만 전통주로 인정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으로 오히려 진, 탄산와인 등 전통주와 관련이 없는 주종이 온라인 판매의 헤택을 누리고 있다.



27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서울장수, 국순당, 지평 등 일반적인 막걸리들은 법률상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할 수 없다. 막걸리뿐만 아니라 전통방식으로 쌀을 증류해 만든 백세주와 화요, 일품진로 등도 전통주에 속하지 않아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상황은 제조방식보다 누가 만들었지가 중요한 전통주 기준에서 비롯됐다. 전통주산업법과 주세법에 따르면 전통주는 △정부가 지정한 장인(무형문화재 면허 보유자)이 만든 술 △정부가 지정한 식품 명인이 만든 술 △지역 농민이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소비자가 흔히 전통주로 인식하는 막걸리는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해 전통주가 아닌 '전통주 등'으로 분류된다. '전통주 등'은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원리를 계승, 발전시킨 우리 술로 의미를 확장한 개념이다. 법적인 전통주가 아니라 온라인 판매는 금지되고, 주세 50% 감면 혜택도 받지 못한다.

우리 술 제조업체들은 이같은 전통주 기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소주와 맥주 등 다른 주류업체들이 보기에는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장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통계 및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막걸리 시장 규모(출고금액 기준)는 4,706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주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5%로 희석식소주(42.09%)와 맥주(39.75%)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통주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업에서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며 "수년 째 정체 중인 막걸리 시장 성장을 위해서라도 전통주 기준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모호한 전통주 기준은 형평성 논란도 야기하고 있다. 막걸리와 백세주 등은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해 온라인 판매가 금지됐지만,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다는 이유로 해외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은 오히려 온라인 판매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애플 사이다, 상그리아 탄산와인, 오미자 리큐르 등이 전통주로 판매되고 있다. 지역 농민이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작한 전통주 요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적 전통주와 문화적 전통주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소비자 혼란만 커지고 있다"며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막걸리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정부에서 전통주의 개념을 더 유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박민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