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관광·맛집 아닌 제주 사람 이야기 하고 싶었죠”

현지 토종 의류브랜드 ‘한림수직’ 복원한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

제주 여성 경제 자립 위해 설립돼

생산된 니트 국내 호텔·日서도 판매

사라진 윗세대 기억 후대와 공유해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 전했으면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가 한림수직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 한림 성이시돌센터에서 원래 한림수직에서 만든 스웨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선영 재주상회 대표가 한림수직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 한림 성이시돌센터에서 원래 한림수직에서 만든 스웨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림수직을 재연하려는 것은 기억을 재생하고 세대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고 여행의 목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7년 전 사라진 제주 토종 브랜드 ‘한림수직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 고선영(46) 대표는 2일 제주 한림 성이시돌센터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라는 것은 원래 있던 것에서 새로운 것이 쌓이면서 지역만의 특색을 갖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대표는 서울에서 여행 잡지 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2014년 제주 여행 전문 잡지 ‘인(iiin)’을 창간했고 지금은 청년 작가 에이전시, 디자인 브랜드, 로컬 편집숍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제주를 관광지와 지역 맛집 정도로만 기억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참된 여행이란 그곳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한림수직에 대한 관심도 여기서 출발한다.

고선영 대표가 설립 당시 사용했던 한림수직센터 현판에 얽힌 내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선영 대표가 설립 당시 사용했던 한림수직센터 현판에 얽힌 내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림수직은 1959년 3월 아일랜드에서 온 맥그린치 신부가 제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성이시돌목장에서 만들었던 한국 최고의 양모 니트 브랜드였다. 손으로 베틀을 돌려 만든 100% 수제 제품으로 서울 조선호텔에 직영 매장을 열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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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브랜드를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한마디 때문이다. 고 대표는 “일본에 빈티지 의류를 사러 갔던 지인으로부터 한림수직이라는 브랜드가 그곳에서 전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알아보기 시작했다”며 “알고 보니 한때 명품 의류로 마니아들 사이에는 꽤 이름을 알렸던 브랜드였더라”고 소개했다.

복원 작업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원래 한림수직을 만들 때 키웠던 양들의 후손 50마리로부터 필요한 양털의 절반을 얻고 나머지는 버려진 양모를 재생해 니트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1000점의 제품들은 이후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모두 판매됐다. 매출액은 1억 원. 큰돈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충분했다.

고선영 대표가 한림수직이 문 닫기 전 생산했던 모직 담요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고선영 대표가 한림수직이 문 닫기 전 생산했던 모직 담요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한림수직은 단순한 의류가 아니라 척박한 삶을 사는 제주 여성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부여한 브랜드다. “1959년부터 2005년까지 존재했던 한림수직에 많게는 1300여 명이 넘는 제주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술 전수와 노동을 통해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준 셈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유입니다.”

한림수직을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다시 똑같이 만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의 한림수직이 제주 여성들의 삶과 희망이었다면 지금은 당시 세대가 거쳐왔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후대와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 대표는 “한림수직은 미처 몰랐던 것, 원래 있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모든 세대에게 전달하는 기억의 고리”라며 “이를 통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한림수직이 사라진 이유를 경쟁력 부족 혹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판단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자본의 논리에 밀린 것이 아니라 ‘제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원래의 쓸모를 다했기 때문이라고 바라본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브랜드 재생에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는 니트 제작 기술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하는 데 힘을 쏟으려 한다. 고 대표는 “이전까지는 브랜드 재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옷을 완성하는 과정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주력할 것”이라며 “니팅 학교 등 청년들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제주)=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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