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美·중동에 대체 조달 ‘SOS’…손실 날까 공장가동률도 낮춰

■러시아산 원유 금수에…비상계획 세우는 정유사

CDU 가동률 높여왔던 국내 4사

이달 정제마진 하락세 돌아서자

보수적 가동 기조로 수요절벽 대비

이란 제재 해제 기대 속 수입 논의

글로벌 수입 경쟁은 치열해질 듯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공식 발표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비상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나섰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리스크가 커지면서 중동산이나 미국산 등 대체 조달처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는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가능성에 주목하며 이란산 원유를 도입하는 방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시하고 있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유 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작업에 들어갔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 수준에 따른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가능성이 낮다고 점쳐졌던 국제 유가의 100달러 돌파가 현실화하면서 올해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한때 배럴당 129.44달러까지 올랐다가 결국 123.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장보다 3.6% 오른 것으로, 종가 기준 지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제재에 대한 동참 여부는 각국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수급 차질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커 당장 대체 수급처를 찾는 데 분주하다. 국내 정유 업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 수준으로 낮은 편이지만 중동산·미국산 원유를 둘러싼 글로벌 정유사들의 수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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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원유 수입 비중은 중동산이 58.1%로 가장 높고 미국·멕시코 등 북미산이 12.4%로 뒤를 이었다.

국내 정유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정유사들이 일제히 러시아산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에 대체 물량을 확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 “유가 프리미엄이 더욱 높아지면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글로벌 석유 업체 셸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엑슨모빌 등 메이저 석유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국내 정유 업계는 대체 공급선으로 미국과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에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복수의 정유사들이 이란 국영 석유 업체(NIOC)와 원유 수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JCPOA) 복원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도입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란산 원유는 미국의 경제제재 이전인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원유 수입량의 13%를 차지했다. 다만 제재 해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해제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실제 도입까지 최소 3~4개월이 걸려 단기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수요 절벽에 대비해 가동 기조도 보수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유 업계는 가동률을 점진적으로 높여왔는데 이를 다시 낮추고 있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 1월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원유정제설비(CDU) 평균 가동률은 전년 동기 대비 9.9%포인트 증가한 81.6%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고유가 기조로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통상 정유사들은 유가가 오르면 단기적으로는 재고 이익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돼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 실제로 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 마진은 이달 첫째 주 배럴당 5.7달러로, 전주(6.9달러)보다 1달러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최악의 경우 정제 마진이 마이너스로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적어도 오는 5월부터는 보수적인 가동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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