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숨차고 손발 붓는 증상, 심부전으로 오인…희귀 심장병 'ATTR-CM' 진단 놓칠수도

아밀로이드 심장에 쌓여 생존기간 2~3.5년 불과

진단 늦어질수록 경과 악화…조기진단이 최선

사망률 낮추는 신약 나왔는데 보험적용은 기약없어

ATTR-CM은 흔히 심부전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심부전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극희귀질환으로 제때 진단 받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지투데이ATTR-CM은 흔히 심부전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심부전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극희귀질환으로 제때 진단 받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지투데이




#직장인 강성철씨(55가명)는 손발이 붓고 호흡이 편치 않아 심해지자 4년 전 병원을 찾았다. 전문가로부터 부정맥 등 심장질환에 의한 증상일 확률이 높다는 소견을 듣고 심전도 등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증상이 나아지기는 커녕 발끝 신경이 저릿한 증상까지 나타났다. 강 씨는 대형 병원에서 핵의학검사를 받은 끝에 '유전성 트랜스티레틴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이란 진단을 받게 된다.



◇ 심장에 아밀로이드 쌓이는 극희귀질환…들어 보셨나요?


이름조차 생소한 AATR-CM은 혈액 내에서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운반 단백질인 트랜스티레틴(TTR)이 불안정해지며 잘못 접힌 단위체로 분리돼 심장에 쌓이는 희귀질환이다. 아밀로이드라고 불리는 이상 단백질이 체내 여러 조직이나 장기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증의 일종으로, 아밀로이드가 심장에 쌓여 문제를 일으킨다고 이해하면 쉽다.

ATTR-CM 환자들은 흔히 심부전과 관련된 체액 저류, 부종,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벽이 두꺼워져 울혈성 심부전 또는 부정맥을 일으키고, 신체 제한이 커지면서 삶의 질이 현격히 낮아진다. 트랜스티레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야기되는 유전성 ATTR-CM과 유전성이 아닌 정상형 ATTR-CM, 2가지 아형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 수가 매우 적어 정확한 유병률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희귀질환자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아밀로이드증 소견으로 새롭게 등록된 환자는 170명이었다. 다만 아밀로이드증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 중 ATTR-CM 환자가 몇명인지에 대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2022년 현재 약물치료가 필요한 국내 환자수를 100명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 생존기간 4년 채 안되는데…'심부전' 오진 부지기수



ATTR-CM 환자들은 아밀로이드가 축적되면서 제한성 심근증을 일으키므로 예후가 급속도로 나빠진다. 미국심장학회(ACC)는 환자가 ATTR-CM으로 진단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생존기간이 약 2~3.5년에 불과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문제는 강씨 사례와 같이 진단이 늦어지거나 오진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극희귀질환인 ATTR-CM은 심장내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다. 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종류도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심장 조직검사나 핵의학검사를 통해 아밀로이드 심장 침윤 여부를 확인되지 않으면 진단조차 내려지기 힘들다. 중장년층 남성이 부종, 호흡곤란, 부종, 피로 등의 증상과 제한성 심근증, 심부전, 부정맥 등의 소견을 보이면 심박출량 보존 심부전(HFpEF) 환자 등으로 오진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의료계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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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전문가들은 "ATTR-CM 환자의 치료성적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조기진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질병 진행 늦추는 신약 등장…“하루 한번 먹으면 사망 위험도 낮아져”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빈다맥스(성분명 타파미디스)'가 국내 도입되면서 ATTR-CM 조기진단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안정화시키고 분열을 방지함으로써 체내 아밀로이드 축적을 지연시키는 기전의 약물이다. 지난 2020년 8월 정상형 또는 유전성 ATTR-CM 성인 환자의 심혈관계 사망률 및 심혈관계 관련 입원 감소에 관한 효능효과를 근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앞서 2015년 4월 트랜스티레틴 가족성 아밀로이드성 다발신경병증(TTR-FAP) 치료 용도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빈다켈'과 주성분의 화학적 기본골격(타파미디스)이 동일하지만, 메글루민염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무염제제라는 차이점이 있다. 언뜻 유사해 보이는 대상 질환도 전혀 다르다. '빈다켈'의 권장 용량이 20mg 1캡슐 1일 1회 복용인 반면, '빈다맥스'는 61mg 1캡슐 1일 1회 복용이 권고된다. 정상형 또는 유전성 ATTR-CM 성인 환자의 치료 용도로 국내에서 허가 받은 약물은 '빈다맥스'가 유일하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은 빈다맥스가 ATTR-CM 환자의 질병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ATTR-CM 환자 44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ATTR-ACT' 다기관 위약대조 3상 임상 시험에 따르면 빈다맥스를 복용한 환자군(264명)은 위약군(177명) 대비 사망 및 심혈관 관련 입원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았다. 지난해 12월 미국심장협회(AHA) 공식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ATTR-CM 환자의 장기 생존율도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평생 먹어야 하는데 한해 비용 수억 원 호가…환자들에겐 ‘그림의 떡’


종전까진 ATTR-CM 진단을 받아도 장기부전에 의한 증상을 관리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질병 진행을 늦추는 약물의 등장으로 ATTR-CM 치료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빈다맥스'가 국내 허가를 받은지 2년 가까이 되어가도록 대부분의 환자는 비용부담 때문에 약물을 복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FDA 허가 당시 '빈다맥스'의 표시가격은 연간 22만 5000달러였다. 한해 약물치료 비용만 2억 5000만 원에 달한다. 워낙 고가인 데다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의 특성 탓에 국내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다. ATTR-CM은 정확한 환자수조차 파악하기 힘든 극희귀질환이다. 경제성평가 등 통상적인 절차로는 보험급여 등재가 쉽지 않다보니 벌써 2차례나 보험급여 등재에 실패했다. 한국화이자제약은 현재 정부와 치료비용을 나눠 분담하는 위험분담제(RSA) 등의 경로를 활용한 급여 등재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뇌혈관병원 아밀로이드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은석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세계희귀질환의 날을 맞아 마련된 국회토론회에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전 교수는 "대체 치료법이 없는 질환에서 강력한 임상근거를 갖추고 허가를 받았음에도 현실적으로 처방이 불가능하다는 데 대해 의료인으로서 안타까움이 크다"며 "대체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에 대해서는 치료제 허가와 동시에 환자들이 빠르게 치료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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