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얼굴 나온 동영상이 재판정에… 성범죄 피해자에겐 악몽이죠”

'국내 1호' 신진희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

조주빈·만민중앙교회 사건 등

성범죄·아동·장애인 학대 담당

매년 최소 200건씩 변호 맡아

신진희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신진희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변호사조차 직접 대면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수치스러운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죠. 현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신고하는 순간 국가 경찰 등 공권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재판 할 때도 교도관이나 재판정 경호원 등 제 3자가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끔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3자가 영상을 보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9일 서울 보라매병원 사무실에서 만난 신진희(52)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는 2013년 성범죄와 아동·장애인 학대 피해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 서울 유일의 전담 변호사인 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담당하는 사건은 매년 200 여건. 2019년 만민중앙교회 목사 여신도 성폭행 사건, 2020년 ‘n번방’ 또는 ‘박사방’으로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조주빈 사건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신 변호사는 전담 변호사의 필요성을 피해자들의 위험 대처 능력 부족에서 찾는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경우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친족 성폭력의 경우 가족들이 오히려 신고를 말리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그는 “직장 성희롱 피해자들은 보복 당하지 않고 회사에 다니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때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정해주는 것이 전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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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인 조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신 변호사의 휴대폰은 한밤중에 울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가해자들의 협박이나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자들로부터 걸려오는 것들이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피해자가 새벽 2~3시쯤 전화해 ‘죽어 버리겠다’고 말한 뒤 끊더군요.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어요. 너무 놀랐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수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뒤늦게 문자를 확인을 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정말 식은 땀이 납니다.”

신진희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신진희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


최근 들어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범죄가 진화하는데 피해자 보호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간 등 대면 성범죄의 경우 종이에 진술을 하면 끝이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영상이 남는다. 게다가 본인 확인을 위해 반드시 경찰관과 피해자가 같이 영상을 봐야 한다”며 “다른 사람에게 치욕스런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판사나 검찰, 변호인 등은 어쩔 수 없지만 교도관과 같은 사람까지 보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영상 속에 나오는 이는 사람인데 재판에서는 피사체, 영화 취급한다”며 “제3자까지 동영상을 볼 권한은 없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어린 아이들이 법정에서 피고인 변호사들의 반대 신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견딜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아동친화적으로 질문을 하라고는 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신 변호사는 “내 아이가 다시 증인으로 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법 개정을 해야 하겠지만 고민이 많은 지점”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천대엽 대법관을 가장 존경한다. 자신이 맡았던 첫 사건에서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증인으로 재판정에 서야 했는데 당시 판사였던 천 대법관"이라며 “그 때는 거의 없었던 비디오 심문을 행하고 심문 전 피해 아동을 만나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했던 모습을 보며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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