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과 비건지향인들에게 항상 동네 마트처럼 열려 있는 채식한끼몰(링크). 비건지향인 에디터들도 종종 이용하면서 어떤 이들이 운영하는 몰일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만나고 왔어요. 채식한끼몰이랑 채식한끼 앱을 운영하는 '비욘드넥스트'의 박상진(사진) 대표님은 심지어 지난 15년간 채식주의자의 길을 걸어오신 분. 회사 다니던 시절 고기 없는 점심 먹기가 힘들어서 창업을 하게 된 만큼 그동안 해 온 고민, 지금까지 내린 결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어요. Q&A로 정리해 볼게요. 존댓말은 생략.
"내가 힘들어서 만든 회사"
Q. 어쩌다 채식주의자가 됐어?
A. 어렸을 땐 풀을 싫어하고 고기를 좋아했지. 그런데 군대 있을 때 '음식혁명'이란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됐어. 이전에는 고기를 먹는 행위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공장식 동물사육이랑 축산업의 탄소배출량, 채식이 건강에 좋은 이유를 알고 나니까 동물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더라. 그리고 책 속에 송아지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었는데, 그 눈을 보니까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어.
처음에는 내가 알던 상식과 너무 다른 이야기라 사이비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다른 책들도 열심히 찾아봤더니 다 신뢰할 수 있는 저자들인 거야. 단칼에 채식주의자가 됐지. 처음에는 고기 꿈도 꿨는데 세 달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
지금은 한달에 90끼를 먹는다 치면 80끼 넘게 비건 식단으로 먹어. 완전 비건 식단이 아닌 경우라도 고기는 안 먹는 페스코(위의 표 참고) 식단이고.
Q. 창업도 본인이 힘들어서(...) 했다면서?
A. 게임 회사에 다녔는데 채식 점심을 먹기가 너무 힘든거야. 그래서 2017년 3월부터 소셜 계정을 운영하면서 채식인 모임을 많이 했고, 한 400명 정도를 만나서 의견도 구했지. 공통적인 고충은 역시 점심식사였어. 그래서 식당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거야. 그러다 2017년 11월에 비욘드넥스트를 설립했고, 2018년엔 채식한끼 앱을 만들었어. 데이터 플랫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결국 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한 게 2020년 문을 연 채식한끼몰이야.
Q. 비건 식당 정보를 담은 채식한끼 앱은 완전 노동집약적이라서 감동의 눈물이 났어.
A. 예를 들어 해방촌이면 맨 아랫집부터 맨 윗집까지 일일이 손님으로 가 보고 정보를 모았지. 이런 작업을 가장 활발히 하는 게 우리 팀이다 보니 제보도 많이 들어와. 사람을 더 투입해서 더 정보를 모으면 좋겠지만 우리도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라 아직은 아쉬워.
채식을 택한 이유 1위는 환경, 2위는 동물권
Q. 채식한끼몰 주요 고객층은 어떤 사람들이야?
A. 20~30대 여성이 대다수야. 누적 회원수가 11만명인데 여성 비중이 70~80%, 2030 비중은 60~70%쯤 돼. 가입할 때 채식을 하(려)는 이유를 고르게 돼 있는데, 환경-동물권-건강 순으로 비중이 높아.
Q. 포장재는 살짝 아쉽기도 해.
A. 보냉제가 아니라 물을 얼리는 아이스팩을 쓰고 있는데, 포장재는 일부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들이 있어. 어떻게 할지 팀원들과 논의를 많이 했지. 이상적인 길로 가자면 다회용기랑 재사용 종이박스를 쓰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로컬 제품만 팔고 전기차로 배송해야 해. 궁극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더라도 당장은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점차 개선하자고 생각하고 있어.
대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채식으로 바꾸면 탄소배출이 줄고 실질적인 임팩트가 발생하잖아. 그들이 재구매하고 채식을 계속하도록 하는 데 더 집중하기로 했지. 그 과정이 아주 완벽하진 않아도.
Q. 자체브랜드(PB) 상품이랑 비건 반찬 정기배송도 있더라. 앞으로 또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
A. 그래놀라 제품 3종을 채식한끼 PB로 출시했고 매년 조금씩 시도하려고. 비건 반찬 정기배송 서비스는 '비건위크'인데, 줄곧 채식한끼몰 인기 1위야. 비건 식당 정보를 모으고 접근성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어. 아직 별로 없으니까. 결국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하는데 그건 너무 어렵잖아. 그래서 반찬 정기배송으로 채식 접근성을 높여보기로 한 거지. 그리고 올해 중으로 앱이랑 몰이랑 통합할 예정이야. 채식주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품군이 다 들어갈 거고, 그 다음에는 각종 캠페인 같은 데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쉽고 맛있게, 하루 한 끼만 채식하기
Q. 채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잖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A. 채식의 좋은 면을 보여주는 게 설득이라고 생각해. 쉽고, 맛있고, 건강하단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채식을 시작할 땐 이 정보가 너무 새롭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하려고 했지. 채식주의자들에겐 누구나 그런 '열혈투사 시기'가 있어. 그때 주위 사람들이랑 트러블이 많이 생겨. 상대방이 오히려 채식에 반감을 갖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채식의 좋은 면을 보여주면서 한끼부터 시작해보도록 권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
하루에 한끼를 비건채식을 하면 탄소배출량이 2kg쯤 줄어. 그래서 우리 이름이 '채식한끼'야.
Q. 그런 생각이 마케팅에서도 드러나는 듯?
A. 나 스스로는 동물권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됐지만 우리 팀은 비즈니스로 사회를 바꿔보려는 팀이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해.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래서 회사 차원에선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해.
채식을 처음 시도하면 심리적·물리적 장벽이 있잖아. 다들 좀더 편안하게 채식을 시도했으면 좋겠어.
수학도 처음부터 미적분 하는 건 아니잖아. 덧셈, 뺄셈부터 잘 한다 칭찬받으면서 배우는 거고. 그런 긍정적인 메시지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선택의 순간에 서있는 분들을 긍정적인 메시지로 설득해서 채식을 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미션이야.
Q. 정말 많은 공부가 됐네. 그럼 마지막 질문. 비건 시장, 앞으로 지금보다 더 흥할까?
A. 아직까지는 시장이 작아서 새로운 팀(스타트업)들이 등장했다가 금방 사라지곤 해. 그나마 대기업들도 진출하고 언론들도 관심을 가져서 공급이 늘어나니까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인 것 같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채식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거라고 봐. 담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있었던 거 알아? 그런데 (수십년에 걸쳐)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가 이뤄지고 지금은 흡연율도 감소하고 있지. 고기도 비슷한 과정을 밟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은 필수 식품처럼 여겨지지만 앞으로는 기호품처럼 일부 사람들만 먹게 될 것 같아.